미국 국방(전쟁)부가 유럽에 주둔한 미군 약 8만명의 규모와 배치를 조정하는 방안을 오는 11월 초까지 마련할 것이란 외신 보도가 나왔다. 병력 배치에는 국방비뿐 아니라 미군의 기지·영공 사용 보장 여부와 이란전쟁 등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협조 수준도 반영할 방침이다. 유럽에서는 미국에 비협조적이었던 국가가 미군 감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군 병사들이 26일(현지시간) 독일 호헨펠스에서 열린 다국적 군사훈련 ‘세이버 정션 26(Saber Junction 26)’에서 M113 장갑차 옆에 서 있다. EPA=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미 국방부 내부 검토지침에 따르면 국방부는 오는 11월 6일까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최소 4개의 유럽 주둔군 조정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각각의 방안에는 병력을 얼마나 줄이거나 유지할지, 어느 지역에 배치할지, 어느 속도로 조정할지와 이에 따른 비용 등이 담긴다. 유럽 주둔 미군 최고 지휘관과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다음 달 18일까지 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한다.
이번 검토에서 눈에 띄는 것은 동맹국의 대미 협조 수준이 미군 배치를 결정하는 평가 기준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각국이 미군의 기지 사용과 영공 통과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지, 미군 작전에 필요한 우주·사이버·정보 인프라를 갖췄는지 등을 살펴볼 방침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정한 국방비 지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와 미군 감축으로 생기는 전력 공백을 자체적으로 메울 능력이 있는지도 평가한다.
미국이 올여름 나토 회원국에 보낸 설문에도 이런 기조가 드러났다. 미국은 각국에 미군의 기지 사용이나 영공 통과를 제한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이를 해제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국방비 지출과 무기 조달뿐 아니라 유럽과 중동 등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는지도 질문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지난달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전쟁 당시 일부 나토 회원국이 미군 전투기의 기지 사용이나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않거나 승인을 늦췄다며 불만을 표시해왔다. 헤그세스 장관도 지난 6월 유럽 주둔군 재검토를 발표하면서 일부 나토 회원국에 대해 무임승차한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미국이 이미 병력 감축 방침을 정한 뒤 어느 나라에서 병력을 뺄 지를 가려내는 절차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한 유럽 당국자는 로이터에 “실제로 결론을 내기 위한 검토인지, 이미 결정이 내려진 상태에서 진행되는 절차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회원국은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기 위해 기지 사용 조건을 개선하는 방안까지 미국 측에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감축 규모와 대상 국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현재 병력 수준을 유지하는 방안부터 감축하는 방안까지 여러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유럽의 미군 병력 수준을 낮추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로이터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