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피거품 내뿜는 동생 보던 형…간호사 공포에 떨게 한 질문

중앙일보

2026.08.27 02:39 2026.08.27 13:27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종합병원 중환자실에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아산병원 종양내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숱한 죽음을 목격한 필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혼자 맞는 죽음은 차고 시리다


그는 50대 후반 간암 말기 남성이었다. 한때는 건강했을 구릿빛 피부엔 심한 황달 증세 탓에 누런 빛이 감돌았다. 횡격막을 압박할 정도로 복수가 차 배는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몇 걸음 내딛고 나면 항상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팔다리도 심하게 부어 움직임이 둔했고, 혼자서는 일상적인 동작도 버거워 보였다.

2주 넘게 간호했지만, 그는 내게 꽤 어려운 환자였다. 담담하고 굳은 눈빛.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에 무미건조한 말투로 “아프니 진통제를 달라”고 차갑게 요청하는 게 전부였다. 처치를 받을 때도 귀찮아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항상 혼자였다. 보호자 없이 고독하게 버티는 모습은 그의 강직함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간호하는 내내, 나는 한 번도 그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의 강직함 뒤에 숨겨진 쓸쓸함이 문득 가슴에 걸렸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상태는 점차 악화했다. 간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복수가 더 차오르면서 이제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혹여 낙상이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며 몇 번이고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권했지만, 그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귀찮다는 듯 짧게 말했다.

“가족이 없습니다.”

세상에 자기 곁을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을,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맴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력은 더 떨어졌다. 강직했던 인상마저 희미해지자 더욱 신경이 쓰여 시간이 날 때마다 그의 병실로 향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씀하셔야 해요. 혼자 무리하지 마시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더 이상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표정에서 옅은 미소 한 번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입원 기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더는 완화될 수 있는 증상이 없어 병원에서는 그에게 연고지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권했다.

그러던 어느 저녁, 스테이션에 콜벨이 울렸다. 급히 달려가자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콜벨 누르지 않으셨어요?”

내 물음에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리며 그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상황을 파악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뒤늦게서야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버튼을 잘못 누른 거라고 설명했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었다. 간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태였고, 언제든지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었다. 의식 변화가 있는 건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는 다행히 묻는 말에 정확히 답했고 아직은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었다. 순간 머쓱하게 웃으며 “아, 자꾸 왜 이러지”라고 말했다. 내게 헛걸음을 하게 했다는 미안한 마음에 머쓱하게나마 웃음을 지어 보인 것이다. 그를 간호한 지 20여 일이 지나고서야 처음으로 보게 된 웃는 표정이었다.

‘아, 이렇게 웃을 수 있는 분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저릿했다. 나는 연달아 괜찮다 말하고 병실 밖으로 나섰다. 혹시나 이 작은 행동이 그의 의식 변화의 전조증상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무연고자라던 그의 입원 기록에는 사실 형의 번호가 남아 있었다.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계속)

“동생분 상태가 위중합니다. 빨리 오세요.”

수화기 너머 돌아온 형의 첫마디는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수차례 독촉 전화 끝에 겨우 병원에 모습을 드러낸 형.
AI활용 이미지.

AI활용 이미지.


홀로 누워있던 환자가 외로워 보이지 않길 바란 간호사의 선의는, 형을 마주한 순간 공포와 후회로 변했다.

며칠 뒤, 결국 동생은 코와 입으로 피거품을 뿜어내며 사경을 헤매기 시작했다. 의식을 잃어가는 동생을 가만히 보던 형은 나지막이 간호사에게 물었다.

“환자가 들을까 무서웠다.” 간호사를 공포에 몰아넣은 형의 충격적인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9088


김민경([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