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얼음이 녹아 바닷길이 열린다는 말은 일찍이 들었지만, 히말라야 빙하가 녹아 내려 대재앙을 일으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첨단 관측장비로 무장한 미국 지질조사국마저 처음엔 지진이 발생했다는 오보를 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난 26일 발생한 네팔 대홍수는 기후변화의 재앙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와 규모로 일어날 수 있음을 실증했다. 산사태와 홍수는 집중호우나 태풍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상식도 뒤집혔다. 이번 산사태는 말그대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주민들은 영상 18도의 쾌적한 날씨속에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롭게 일터로 나섰다가 순식간에 천지가 진동하고 강물이 뒤집히는 재난을 당했다. 관측된 진동은 규모 5.2의 지진과 맞먹는다고 한다. SF 재난 영화에서 보던 초현실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졌다.
재난이 무서운 건 과거의 양상을 답습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난은 인간이 축적해온 경험과 데이터의 임계치를 가뿐히 넘어선다. 예측과 대책 마련이 번번이 뒤통수를 맞는 이유다. 기후변화의 재난이 한반도를 피해 갈 것이란 기대는 요행에 운명을 맡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올 여름 우리는 기록적인 폭염 속에 극한 가뭄과 극한 호우가 연이어 닥치는 이변을 겪었다. 이 역시 앞으로는 이변이 아닌 일상일 것이다. 조상들이 명당으로 꼽던 배산임수(背山臨水)는 이제 뒤로는 산사태, 앞으로는 강물 범람의 위험을 안은 취약지형이 됐다. ‘위험사회’를 경고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통찰처럼 고도화한 첨단산업과 거대도시는 한계를 벗어난 재난 앞에 오히려 더 취약성을 드러낸다.
공교롭게도 네팔 대홍수 이튿날,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신규 댐 5곳 건설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극한가뭄, 극한호우에 대한 대응과 용수 확보를 위한 고육지책이다. 대표적 환경론자였던 김 장관조차 기후이변이라는 팩트 앞에서는 소신을 접고 겸허해질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