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공개된 지 4년도 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AI)은 어느 범용기술보다 빠르게 경제의 중심에 들어왔다. 기술 발전 속도와 투자 규모, 기업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기술의 영향력과 그것을 공급하는 기업이 얻는 수익은 별개다. 철도와 인터넷은 경제 전체를 혁신했지만, 투자한 이들이 모두 승자가 되지는 않았다. 최근 반도체 주가의 급등락도 AI의 중요성에 대한 의심보다는 발전 속도와 이윤에 대한 견해 차이 탓이다. AI를 국가정책의 중심에 놓고 인프라 구축에 깊숙이 참여 중인 한국도 AI 가치사슬의 향방을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구글 등 AI 모델 빌더 매출은 급증하겠지만 압도적 기업 나오기는 힘들어
작은 성능 차이보다 금융·의료·제조 등 현장 이해도·연결이 중요해질 것
AI, 기존 질서 전복보다는 천천히 여러 산업에 스며드는 범용 투입 요소
제조·의료·금융 현장의 산업 데이터 접근권 설계가 우리의 경쟁력 좌우
AI 생태계의 가치사슬 AI 생태계의 핵심에는 오픈AI·앤트로픽·구글 같은 ‘모델 빌더’가 있다. 이들은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모델을 학습시키고, 이용자의 요청을 처리하는 추론 서비스를 운영한다. 전자가 상품개발이라면 후자는 생산과 영업이다. 양쪽 모두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들고,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 네트워크, 전력설비와 냉각장비를 요구한다. AI 데이터센터는 웹호스팅을 하던 기존 시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AI용 서버랙 한 대는 전통적 서버랙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쓰고, 액체냉각을 요구하는 등 수퍼컴퓨터에 가깝다. 학습시설은 싼 땅과 전력을 찾아가도, 응답 지연이 중요한 추론 시설은 외딴곳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다.
무디스는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메타·오라클·코어위브 여섯 기업의 자본지출이 2026년 7850억 달러, 2027년에는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모델 빌더를 위한 데이터센터 공급자이자 투자자·유통업자이며, 동시에 자체 모델로 경쟁하는 사업자다. 모델 빌더가 서비스를 키우면 인프라 비용이 커지고, 하이퍼스케일러가 자체 모델을 강화할수록 양자의 이해관계는 충돌한다.
이 산업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갈 사업자는 모델 빌더일까.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 있다. AI 서비스에는 다른 산업에서는 좀처럼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비싸게 발명해도 빠르게 모방되며, 팔 때마다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AI의 수익화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 AI는 혁신 성과를 독점적으로 붙잡아 수익화하는 능력, 즉 데이비드 티스(D. Teece)가 말하는 ‘전유 가능성’이 투자 규모에 비해 낮다. 제약회사라면 특허로 복제약을 막고, 지식재산권이 없어도 영업비밀과 공정 노하우로 담을 쌓는 산업도 많다. 하지만, AI 모델은 그런 담을 쌓기가 어렵다. 최첨단 기업들은 핵심 정보를 감추려 하지만, 논문과 연구자 이동, 공개 벤치마크, 큰 모델의 출력을 학습 데이터로 삼아 작은 모델을 키우는 방법론인 ‘증류’ 등을 통해서 선도기업이 찾아낸 길이 빠르게 전파된다. 무엇이 가능한지 알려지는 순간 후발자는 탐색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데, AI 개발에서는 이것이 격차를 크게 줄인다.
딥시크·키미·GLM 같은 중국계 ‘공개형’ 모델은 이런 특성이 현실적 위협임을 보여준다. 에포크AI의 역량지수에 따르면 2026년 1월 이후 공개형 모델은 프런티어 폐쇄형 모델에 평균 넉 달 뒤져있을 뿐이다. 공개형 모델은 엄격한 의미의 오픈소스와는 다르다. 개발 과정은 폐쇄형과 비슷하게 비공개지만, 완성품인 가중치를 내려받아 수정하는 걸 허용해서 ‘오픈웨이트’ 모델이라 부른다. AI 개발의 특성을 활용해서 비교적 손쉽게 성능을 확보하고, 남은 열세는 개방성으로 메우며 값싼 추가 서비스와 생태계 확대로 이익을 얻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보여준 진짜 위협은 선두에 근접한 모델을 개발한 기술력에 있지 않다. 엄청난 비용을 들인 지능도 쉽게 따라 만들어 무료나 저가로 풀고, 그로 인해 선도자의 수익 기반이 빠르게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 데 있다. 선도자는 지금도 비용 부담이 버거운데 기술개발 속도를 높여 격차를 늘리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피지컬 AI에서 우위를 노리는 중국으로서는 기반 AI 모델을 고이윤 상품으로 키우기보다 값싼 공공재에 가깝게 공급하고, 응용과 하드웨어 수요를 키우는 편이 합리적 전략이다. 미국 모델 기업의 수익성을 압박하며 가치의 중심을 자신들이 강점을 지닌 제조 현장으로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수출입 통제 등으로 막으려 해도 원인이 AI 개발 방식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한계가 있다.
김주원 기자
팔 때마다 상당한 비용이 든다 한편, AI는 다른 정보기술(IT)산업에 비해 규모의 경제가 크지 않은 편이다. GPU와 전력을 싸게 조달하고 가동률을 높이며, 전용 칩과 소프트웨어를 최적화하는 과정에는 규모의 이점이 있지만, 그것이 이윤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고정비는 품질경쟁 속에 매 세대 다시 투입된다. 개발 이후에는 추가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일반 소프트웨어와 달리 생성형 AI는 질문과 답변이 늘 때마다 추론 비용이 새로 발생하고, 요구가 복잡할수록 비용은 더 빨리 증가한다. 검색이나 SNS처럼 이용자가 많아지면 창출 가치도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도 약한 편이다. 범용 업무용 모델은 여러 개를 동시에 쓰거나 갈아타기도 쉬운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델 계층에서 검색시장의 구글과 같은 압도적 지배기업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성능 격차는 좁고 추격은 빠르며 사용량이 늘수록 운영비도 증가한다. 인간을 완전히 넘어서는 초지능에 먼저 도달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 가능성만 믿고 자금을 무한정 투입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앤트로픽과 오픈AI가 잇따라 상장 서류를 제출하고, 대규모 설비투자로 잉여현금흐름이 줄자 메타의 주가가 급락한 것은 시장이 성장률 못지않게 자본회수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이윤 기회는 보완자산으로 이동 모델 빌더의 매출이 줄어든다는 뜻은 아니다. 시장은 계속 커지고 매출도 급증할 것이나, 문제는 그 매출이 초과이윤보다는 학습비용과 가격경쟁으로 흘러나간다는 것이다. 티스는 전유 가능성이 작을수록 이윤은 혁신 자체보다는 희소한 보완자산 쪽으로 이동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모델 빌더는 가치사슬의 하류로 내려가 응용서비스와 산업별 솔루션, 독점적 데이터와 고객 접점으로부터 차별점을 찾으려 할 것이다. 작은 성능 차이보다 금융·의료·제조 등 현장의 업무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기존 제도와 시스템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연결하는지가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이윤 기회는 아직 병목이 남은 상류의 연산·메모리·전력과 함께, 보완자산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응용·유통·데이터 방향으로 이동하고, 상당 부분은 경쟁을 통해 소비자 후생 증가로 전이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AI는 단기에 기존 질서를 완전히 뒤집기보다는 천천히 여러 산업에 스며드는 범용 투입 요소의 형태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중장기적으로 이는 한국에도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모델 간 경쟁이 이어지면 지능의 가격은 내려가고 사용량은 늘어난다. 병목이 완화되더라도 메모리·전력기기·냉각·네트워크처럼 한국 제조업이 강한 영역의 총수요는 계속 커질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순탄하리라는 법은 없다. 중국의 메모리 기업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HBM에 대한 수요를 줄이거나 저렴한 메모리칩을 활용하는 시도가 늘고 있는 점은 한국 반도체의 성벽도 안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김주원 기자
한국의 몫은 어디에 있는가 금융의 쏠림도 위험 요인이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최근 미국 경제성장의 약 3분의 1이 AI 투자 및 파생 효과에 기인한다. AI 관련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잔액은 지난해 말 이미 1조2000억 달러로 미국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모건스탠리는 올해 발행액만 57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거대한 설비투자와 장기계약, 부채가 한 방향으로 얽혀 있고, 성장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서로 주고받으며 신용을 키우는 현상도 보인다. 이러다가 모델 빌더나 하이퍼스케일러 중 균열이 생기면 그 충격이 자본시장 전반에 퍼질 수도 있다.
AI 정책의 초점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자신의 역량에 맞는 전략을 골라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모든 계층에서 선두를 바라보는 전략은 현실적이지 않다. 강점이 있는 층에서는 최선을 다하되, 나머지는 일방적 종속을 피할 역량 축적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산업 데이터의 접근권 설계가 시급하다. 제조·의료·금융 현장의 데이터가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열리는지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평가와 보안 요건의 검증 역량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최고의 모델을 만들지 못해도 AI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