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을 다룬 픽션 중 인상 깊은 영화 중 하나는 ‘춤추는 대수사선’이다. 29년 전 일본에서 드라마와 영화로 흥행하고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극 전체에 흐르는 우스꽝스러운 블랙 코미디가 묘미다. 강물에 뜬 변사체를 처리하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된다. 시신을 강 건너편에 닿게 해 다른 경찰서 관할이 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경찰관의 모습이다. 그들도 어떻게든 자기 일을 줄여보려고 잔머리를 쓴다는 불편한 진실을 관객은 목도했다. 경찰 수사가 춤을 추는 것처럼 정신없이 바쁘다는 영화 제목 행간에는 춤사위처럼 예측 불가한 일 처리도 부지기수라는 복선이 깔려 있었다.
변사체 강 건너로 밀친 영화처럼
무책임하고 나태한 경찰관 상존
위험 키운 입법, 똑같은 직무유기
영화 주인공인 열혈 형사는 총격과 추격보다 관료주의에 찌든 현실의 벽에 힘들어했다. 살인 사건에 긴급 출동하려다 “경무과에서 계장과 과장의 도장을 받아와야 순찰차 키를 지급한다”는 안내를 받는 식이다. 긴급 수사팀을 꾸리는 경찰 간부들은 수사본부 이름에 지역명을 넣어 홍보 효과를 높일 궁리만 한다. 말 그대로 ‘웃픈’ 현실이 경찰을 둘러싸고 있다. 사회부 기자 생활에서도 영화의 통찰을 여러 번 체험했다. 화재 사건을 취재할 때는 경찰은 “방화로 추정” 뉴스에 기함했고 전기안전공사는 “누전 가능성”이라는 예측에 질색했다. 방화라면 경찰이 방화범을 잡아야 하고 누전이라면 안전공사가 그 원인과 책임을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청년들은 정의감보다는 안정된 직장을 찾아 경찰직에 지원하고, 일선 경찰은 승진을 위해 실적을 쌓으며, 간부들은 더 높은 자리를 노리며 정치권에 기웃대는 풍경도 지켜봤다.
제주도에서 숨진 채 발견된 30대 여성 장모씨 사건은 여러 영화와 취재 현장에서 느꼈던 씁쓸한 기억을 소환했다. 경찰이 일하는 현장엔 늘 국민의 상식을 벗어난 변수가 숨어 있었다. 형사계엔 영화 ‘범죄도시’의 마석도(배우 마동석) 같은 형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마동석이 납치 피해 여성의 남편으로 출연한 영화 ‘성난 황소’에 더 가까웠다. “아내가 납치됐다”고 신고하는 남편의 우락부락한 외모를 보고 형사들은 아내의 가출이라 지레짐작했다. “CCTV 다 확인해 보셨나요”라고 묻는 가족은 죄인 취급을 당했다. 참다못한 남편이 성난 황소처럼 직접 범인을 잡고 아내를 구하는 게 영화 줄거리다. 그 판타지 같은 결말은 장씨의 유족이나 평범한 피해자들이 겪는 절망과 너무 달랐다.
장씨는 지난 5월 12일 오후 10시 15분쯤 장기 투숙하던 펜션을 나서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그것이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됐다. 남자친구의 실종 신고를 받은 부모(34) 경장은 “장씨와 연락이 닿았지만, 위치를 알려주지 말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2시간 30분 뒤에 사건을 종결해 버렸다. 부 경장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조사 중이다. 그가 여성 화장실에 들어가는 기행을 벌여 직위해제를 당하는 등 품행에 문제가 있었다는 후속 보도가 이어진다. 진상은 더 밝혀져야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많은 국민이 한국의 경찰 시스템에 크게 실망했다는 사실이다. 시신을 상대편 강가로 밀치는 옛 영화 속 병폐는 애교 수준이었다.
여론의 화살이 여권을 향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그런 경찰을 믿고 권한을 한껏 키워주는 형사소송법 개정까지 했으니 불안과 불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찰 개혁을 주문하며 수습에 나섰다.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은 장씨 사건이 보완수사권 폐지 이전에 발생했다는 점을 들며 형소법 개정과의 연관성을 차단하려 했다. 법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 영역에서 생긴 시스템의 실패’라면서다. 여당 입법자들의 궤변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행정의 실패가 두렵기 때문에 입법에 신중해 달라는 게 국민의 하소연 아니었나. 70년 넘은 형소법 체계를 뒤흔들어 그 뒷감당을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부 경장들이 맡게 된 상황에서 그런 무책임한 말이 나오느냐 말이다.
장씨 사건이 시간상으로는 지난 7월의 형소법 개정과 무관할지언정, 비슷한 사건에서 암장의 위험성이 높아진 건 분명하다. 많은 국민과 피해자들이 걱정을 호소할 때 여권은 강성 지지층이 목표로 삼은 검수완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호도했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찰의 한계가 속속 드러나는 상황에서 보완수사권이라는 검찰의 통제 기능을 함부로 날려버린 여당은 실종 기록을 멋대로 없애버린 부 경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국정 지지율이 최저치에 이르고서야 어설픈 형소법 개정의 심각성을 깨달아가는 정부·여당의 일머리에 깊은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