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는 나라를 가장 잘 아는 나라는 아마도 영국일 것이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7회에 걸쳐 건국에서부터 오늘까지의 족적을 기획시리즈로 정리했다. 이 깊이 있는 시리즈는 미국이 건국 이후 ‘언덕 위의 도시’처럼 세계에 비추었던 성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 현재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와 지난 6월 미 국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는 전체 응답자의 63%가 지금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민주당원은 91%가, 공화당원은 25%만 그렇다고 답해 이 나라가 심한 정치적 분열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다음 250년 동안에도 존속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42%(‘거의 확실히’라는 답은 17%)만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러한 분열과 불안의 모습은 트럼프시대 들어 더 깊어져 왔다. 과거 정부 운영과 대통령직을 제약하던 규범과 제도적 견제장치들이 무너짐으로써 건국의 기반이 된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신뢰의 위기도 겪고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일으킨 무역전쟁과 미국우선주의 정책, 공감을 잃은 군사력 사용은 오랜 기간 미국이 쌓아 올린 도덕적 가치와 대외신뢰도도 무너뜨리고 있다.
흔들리는 미국, 깊어진 내부분열
거세지는 중국의 산업·군사 도전
트럼프 이후 미국은 새 전략 모색
한국의 길은 산업·기술과 정치혁신
시장이 연결되고 국가들 간 기술과 생산성의 격차가 줄어들면 결국 인구가 많고 영토 규모가 큰 나라가 패권국가로 부상하게 된다. 미국은 19세기에 영토를 확장하고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이며 2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영국을 제치고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만들었다. 그러나 21세기는 다시 패권의 흥망성쇠가 요동치는 시대가 될 것 같다. 지금은 중국이 새로운 물결을 타고 부상하고 있다. 이미 중국의 경제 규모는 구매력 기준 미국보다 30% 더 크며, 미국의 두 배에 달하는 제조업 능력을 가지고 전 세계 선박, 배터리, 전기차, 희토류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미국보다 더 많은 특허를 출원하고, 인용 횟수가 많은 과학 논문들을 더 많이 발표하고 있다. 중국에도 내부의 취약점들이 많지만, 미국의 어떤 전략도 이제 중국의 부상을 제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금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력 증강, 해외 물류기지 확장, 4차 산업혁명 기술 장악의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트럼프 시대가 끝나면 아마도 미국은 새로운 대외·대중 전략을 모색하려 할 것이다. 지난 반세기 미국은 중국에 대해 유화적 접근과 대립적 접근을 시도해 왔으나, 이 두 전략은 중국의 도전을 막는 데 모두 실패했다. 조지타운대학의 도쉬(Doshi)교수는 미래 대중 전략이 두 가지 기둥 위에 세워져야 할 것이라 제언하고 있다.
첫 번째 기둥은 ‘관리된 경쟁’이다. 즉, 미국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의 힘의 균형을 추구하되 경쟁이 재앙으로 치닫지 않도록 기술, 무역, 대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중국에 명확히 밝히고, 미국의 목표에 한계를 긋는 것이다. 두 번째 기둥은 ‘동맹과의 연합’이다. 미국은 시간이 갈수록 혼자서는 중국과 맞서기 어렵다. 그러나 유럽, 일본, 호주, 인도, 캐나다, 한국 등 동맹국들과 힘을 합치면 무게 추는 다시 기울어진다. 이러한 동맹국들과의 연합은 중국의 GDP보다 2배 이상, 군사비보다 2배, 특허수보다 3배 더 많으며, 전 세계 제조업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반면, 중국은 3분의 1에 그친다. 이는 동맹국 지역에 공동의 관세와 규제 장벽을 세우고 이를 통해 동맹국 기업들에 통합된 시장을 제공해 중국의 과잉생산 능력이 이들 국가의 산업들을 하나씩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견제하자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최첨단 군사기술을 동맹에 제공해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종의 신(新)안보·산업 동맹인 셈이다.
미국은 포스트 트럼프 시대에 과연 어떤 전략을 선택해 나갈 것인가? 트럼프 시대에 상처 난 신뢰와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재건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은 이 연합에서,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떤 입지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인가? 남은 21세기는 아직 한 세기의 나이를 넘기지 않은 대한민국의 영고성쇠에 또 다른 큰 도전의 시대가 될 것이다. 세계가 다시 전쟁으로 치닫지 않고 동서양의 세력 균형과 견제의 질서를, 더 나아가 동서융합의 질서를 세워 나가는 것이 이 지정학적 대변화의 핵 위치에 놓여 있는 한국에는 최선의 길이다. 이 도전의 시기를 헤쳐 가기 위해 한국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요소는 산업 생산 능력과 기술이라는 전략적 자산을 유지·확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 경제·안보 전략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국가 운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이보다 더 기본은 공동체의 규범과 기풍을 제대로 세우고, 정치가 바로 서는 일이라는 것을 국가 흥망성쇠의 역사는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