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부부 주최 공식 환영 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한국의 대미 투자가 진전되지 않을 경우 한ㆍ미 정상회담 합의인 조인트 팩트시트의 안보 분야 후속 협의도 별도로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뜻을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통상과 안보를 최대한 분리 대응하려던 정부 구상이 흔들리면서 양국 간 현안이 서로 얽혀 어느 쪽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꼬인 현안을 풀기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의 9월 방미를 추진하고 있다.
27일 복수의 여권 소식통에 따르면 미측은 최근 정부에 “투자를 비롯해 한ㆍ미 간 불편한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안보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진도를 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미국이 대미 투자 등 통상 현안과 안보 협상을 연계하겠다는 뜻을 정부에 직접 전달한 사실이 알려진 건 처음이다.
한ㆍ미는 지난해 11월 관세ㆍ안보 협상 결과를 하나의 조인트 팩트시트에 담았지만 무게중심은 통상ㆍ투자에 쏠렸다. 총 7쪽 가운데 안보 분야는 약 2쪽이었고 대부분은 한국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관세 인하 등 통상 내용이었다. 정부로선 막대한 투자 부담을 떠안는 대신 핵추진잠수함과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 등 안보 분야 성과를 얻은 셈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투자 이행과 안보 후속 협상을 연계하면서 어렵게 확보했던 안보 성과마저 발목 잡히는 구도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상 문제가 안보를 잠식할 조짐은 이미 있었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월 언론 인터뷰에서 관세와 안보 협상을 한ㆍ미 관계의 “두 개의 필러”라고 표현하며 “관세라는 한 축이 흔들려 지금 이 상황이 생겼다”고 말했다. 관세 갈등 여파로 안보 협의까지 지연되고 있다는 경고등을 켰던 것이다. 이후 정부는 두 분야를 최대한 분리 대응한다는 기조를 유지했고, 지난 6월 서울에서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을 수석대표로 첫 안보합의 후속 협상을 열었다.
그러나 2차 회의는 석 달째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정부는 그간 중동전쟁 등으로 미 국무부의 협상 여력이 부족한 점을 지연 배경으로 설명해왔다. 한 소식통은 “안보와 통상을 엮는 기미는 오래됐는데 우리가 못 알아듣고 안보 협의를 요구하니 불만 표현이 적나라해지고 있는 것”이라며 “한ㆍ미 현안이 다 연계돼 있고 안보도 영향을 피할 수 없다는 톤이 명확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국무부나 상무부 등 특정 부처가 아니라 백악관을 정점으로 미 행정부 전반에 공유돼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25일 여당 신임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대미 투자 압박을 거론하며 핵잠 문제까지 연계되는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4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제4차 비상경제 점검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특히 최근 미측이 강하게 불만을 나타내는 지점은 메모리 반도체 투자라고 한다. 미국은 한국 기업의 대미 반도체 투자를 압박하고 있지만 정부와 기업은 이미 호남에서 대규모 투자 계획이 진행 중인 데다 상업적 합리성도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권 관계자는 “최근엔 반도체 투자 문제가 미측 불만의 핵심”이라며 “미ㆍ중 인공지능(AI) 패권 경쟁 속에 미측의 절실한 수요가 있는데 이는 안 해주면서 정작 미측이 레버리지를 갖는 안보 협상을 진척시켜달라고 하고 있단 느낌을 미국이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1월 중간선거 이후로 넘어가면 안보 협상이 한층 동력을 잃을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조 장관은 다음 달 미국을 찾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ㆍ미 외교장관의 양자 대면 회담은 지난 2월이 마지막이다. 조 장관과 루비오 장관은 지난 24일 통화에서도 조속한 시일 내 대면 협의를 갖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