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가늠하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며, 국가의 생존을 담보할 정예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 제도의 개정은 국가 안보의 근간을 다루는 중대사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과 일부 행정 편의주의적 시각에 의해 추진되는 ‘통합사관학교 설치’ 및 ‘육사 폐지론’은 충분한 공론화나 야전의 동의 없이 졸속으로 밀어 붙여지고 있다.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국군사관학교 창설 공청회에서 김홍철 국방부 정책실장(오른쪽부터) 박판준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 이범림 해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전쟁론의 대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는 군의 실체를 통찰하며 이렇게 일갈했다. “물질은 목재의 칼집이고, 정신은 서슬 푸른 칼날이다.” 지금 추진되는 통합사관학교 논의는 전쟁 승리의 본질인 ‘서슬 푸른 칼날(군인정신과 야전성)’을 연마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목재 칼집(외형적 행정 조직)’을 보기 좋게 뜯어고치려는 치명적인 오판에 불과하다.
본 논고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 철학을 빌려, 사관학교 교육이 지닌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과 그것이 군사적 천재성 및 각 군의 전통에 미치는 결정적 영향을 규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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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제비츠가 설파한 ‘마찰’과 지휘관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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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단순한 산술적 계산이나 평면적인 행정 집행이 아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본질을 논하며, 전쟁터에는 평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저항과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마찰(Friction)’이 지배한다고 갈파했다. 이 극도의 마찰 속에서 계획은 무력화하고, 정보는 불확실해지며, 조직은 혼돈에 빠진다.
이 거대한 마찰을 돌파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힘은 고도화된 무기 체계나 책상머리 행정 매뉴얼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군사적 천재성(Military Genius)’에서 비롯된다. 클라우제비츠가 정의하는 군사적 천재성이란, 혼란의 안개 속에서도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불확실성 속에서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결단력, 그리고 예기치 못한 역경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과 용기를 의미한다. 이 모든 요소는 물질적 수단이 아니라, 철저히 인간의 정신과 의지의 영역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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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천재성과 각 군 고유의 문화·습성
그렇다면 이 치명적인 마찰을 극복하는 군사적 천재성과 정신력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그것은 하루아침에 주어지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축적돼 온 각 군 고유의 문화, 전통, 그리고 습성(Ethos)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비로소 발아할 수 있다.
국군사관학교 창설 관련 공청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육·해·공 사관학교 통폐합 반대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육·해·공군 각 군의 독자적 존재 이유는 육군이 거친 대지 위에서 진흙탕을 건너며 부대를 이끄는 끈질긴 인내와 현장 지휘의 전통을 가졌다면, 해군은 망망대해의 고립 속에서 함정을 지키는 명예와 책임을, 공군은 창공에서 수초의 순간에 생사(生死)를 결단하는 민첩성과 전문성을 각각 체화해 왔기 때문이다.
각 군의 문화와 습성은 서로 다른 전장 환경(육상, 해상, 공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로써 닦아온 고유의 생존 방식이자 정신적 유산이다. 이를 무시한 채 모든 군사 교육을 하나의 틀로 뭉뚱그리려는 통합사관학교 발상은, 각 군이 지닌 고유의 서슬 푸른 칼날을 일괄적으로 무디게 만드는 자해적 행위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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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 교육은 ‘칼날’을 벼려내는 첫 용광로
군사적 천재성의 불씨를 지피고, 각 군의 고유한 전통과 정신을 청년 장교들의 내면에 각인시키는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용광로가 바로 사관학교다.
사관학교는 정신과 의지의 요람이다. 사관학교는 단순한 학문 지식을 전달하거나 행정 실무를 가르치는 일반 대학이 아니다. 이곳은 생도 시절부터 국가와 민족을 위한 헌신, 극한의 상황을 견디는 극기(克己), 그리고 부하의 생명을 책임지는 지휘관으로서의 엄중한 책임감을 뼛속 깊이 체화하는 곳이다.
또한 사관학교의 엄격하고 독자적인 교육 체계는 군이 정치권력의 외풍이나 단기적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다. 이 성스러운 요람을 행정 효율성이나 정치적 입맛에 맞춰 통합하고 개편하려는 시도는, 결국 장교 양성 과정에서 ‘정신과 의지’의 교육을 거세하고 그 자리에 관료주의적 ‘줄서기와 눈치 보기’를 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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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군대’가 초래할 필패망국의 위기
정치적 논리에 길들여지고, 사관학교 고유의 정신적 전통이 훼손된 군대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는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 초상화. 『전쟁론』의 저자로 군사 사상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위키미디어
통합의 미학 아래 개성도, 전문성도, 고유의 군인정신도 실종된 군은 결국 상명하복의 영혼 없는 ‘행정 관료 집단’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또한 마찰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질 것이다.
클라우제비츠가 경고했듯, 마찰이 지배하는 실제 전장에서 서류 작업이나 행정 절차에만 익숙해진 지휘관은 돌발 상황 앞에서 멍하니 멈춰 서게 된다. 결단력과 용기가 결여된 군대는 평화 시에는 권력의 시녀가 되기 쉽고, 전시에는 국가를 필패와 망국의 길로 인도하는 주범이 된다.
야전에서 오직 ‘전승(戰勝)’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평생을 바쳐온 예비역들이 이번 통합사관학교 추진에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책상머리에서 급조된 통폐합은 군의 사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전장에서 군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천재성과 용기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는 치명적 실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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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을 살리는 안보 정책으로의 회귀
물질(조직과 제도)을 다듬는 것이 군 개혁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군의 본질을 외면한 잘못된 물리적 통합은, 장교단의 내면에 깃들어야 할 정신과 의지가 깃든 ‘서슬 푸른 칼날’을 완전히 꺾어버리게 된다.
정부와 군 당국은 안보의 최후 보루를 허무는 졸속 사관학교 개편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클라우제비츠가 경고했듯, 칼날 없는 칼집은 단지 무용한 장식품에 불과하며, 군인정신과 용기를 잃은 군대는 국가를 수호할 수 없다.
사관학교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전하고, 각 군의 문화 속에서 싹트는 군사적 천재성의 용광로를 온전히 지켜내는 것만이 대한민국이 다가올 전장의 마찰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