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 묻은 붓과 캔버스가 그대로 놓인 작업실. 누군가 잠시 자리를 비운 듯한 이곳은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예술가가 생전 사용하던 공간이다. 올해 잇달아 단색화 거장, 김창열·박서보·윤형근 화백이 머물고 작업했던 공간들이 미술관으로 문을 열어 화제다. 세계적인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이들의 작품을 만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지금, 예술가의 가장 사적인 공간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창열 화백이 30년 넘게 작업하고 생활한 집을 개조한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김창열 화가의 집'. 사방이 막힌 가운데 천창과 측장에서 은은하게 빛이 스며드는 구조를 그대로 재현했다. 이소진 기자
“창 밖 풍경까지 작품”...화가의 비밀 공간
지난 14일 찾은 ‘김창열 화가의 집’은 가파른 산자락을 끼고 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도 맨 꼭대기였다. 미술관의 문을 열자, 오르막길의 수고를 보상하듯 탁 트인 산 풍경이 펼쳐졌다. 평일 오후지만 전시장은 관람객으로 가득했다. 종로문화재단에 따르면 하루 평균 200~300명이 이곳을 찾는다. 현장에서 만난 미대생 최혜원(24) 씨는 “작가가 매일 이런 풍경을 보면서 수행하듯 작업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며 감탄했다.
김창열 화백이 생전 거실에 서서 바라보던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관람객들. 미술관은 2022년 ‘서울시 우수건축자산 제13호’로 등록됐다. 이소진 기자
김창열(1929~2021) 화백은 1988년부터 30년 넘게 이곳에 살며 ‘물방울 연작’을 비롯한 수많은 대작을 그렸다. 지하 1층에는 생전 작업실의 모습을 되살린 ‘아카이브실’이 있다. 서재에는 즐겨 읽던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책상 한편에는 슬리퍼와 지팡이가 자리를 지킨다. 물감이 켜켜이 굳어붙은 팔레트와 붓통이 남아 있고, 신문과 전단지 등 손에 잡히는 종이마다 작품 구상을 끄적인 흔적도 눈에 띈다. 완성된 작품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화가의 작업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공간이다.
작가가 생전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재현한 책상과 서가. 이소진 기자
김 화백은 생전부터 자신의 작업실을 대중에게 공개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타계 후 종로구가 유족과 협의해 주택을 매입하고 리모델링해 지난 5월 지금의 모습으로 공개했다. 지상 2층에서 시작해 전시실과 작업실이 있는 지하층으로 내려간 뒤, 야외 정원을 따라 중정을 돌아 나오는 길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회귀’의 여정과도 맞닿아 있어 의미를 더한다.
예술가이자 아버지, 한 사람의 삶이 스민 집
오는 1일 개관을 앞둔 ‘윤형근의 집’은 삶의 흔적을 더욱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 27일 찾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홍대 인근의 번잡한 풍경을 뒤로하고 번듯한 2층 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질반질한 나무 마룻바닥과 문틀, 물감이 밴 테라조 바닥, 코끝에 닿는 오래된 가구 냄새가 집에 쌓인 세월을 고스란히 말해주는 듯했다.
1년간의 수선 및 복원 설계로 재단장을 마친 윤형근의 집. 사진 남궁선, 윤형근 에스테이트, PKM갤러리 제공
이곳은 윤형근(1928~2007) 화백의 장인인 김환기 화백이 1963년 국민주택으로 분양받은 터다. 윤 화백은 1967년부터 이곳에 살다가 1983년 기존 주택을 철거하고 지금의 집을 지었다. 2년간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며 경험한 공간에서 영향을 받아 동생인 윤도근 당시 홍익대 건축과 교수와 함께 1층은 작업실, 2층은 주거 공간으로 설계했다. 이후 타계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가족과 일상을 보내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생활과 예술은 그에게 떨어뜨려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윤 화백은 2002년 파리의 한 갤러리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이 바로 서야 작품도 바로 설 수 있다”며 “작품이 그 사람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집 안에는 예술가 윤형근뿐 아니라 생활인 윤형근의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다.
작업 흔적이 그대로 남은 1층 작업실. 대형 작업을 위해 일반 주택보다 층고를 높이고 너른 창을 냈다. 사진 남궁선 윤형근 에스테이트, PKM갤러리 제공
1층에는 그가 매일 출근하듯 드나들던 작업실과 기록물 등이 전시돼 있다. 2층 주거 공간은 생전 모습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보존했다. 가족이 매일 둘러앉았던 손때 묻은 식탁부터 틈틈이 모은 도자기, 도널드 저드의 조각품과 오디오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작가의 취향은 물론 이 집을 드나든 사람들과 쌓은 인연의 흔적까지 한 공간에 축적돼 있다.
일반에 최초 공개되는 윤형근 화백의 서교동 주택. 2층 주거 공간에서 생전 작가의 가족이 살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진 남궁선 윤형근 에스테이트, PKM갤러리 제공
아내 김영숙 여사가 2017년 작고한 뒤 그대로 남아 있던 집을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부부의 외아들 윤성열(60) 씨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해외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도구나 화구에서도 그 사람의 숨결이 느껴졌다”며 “작가는 세상을 떠날 때 그림만 남기는 게 아니라 삶과 이야기까지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개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윤형근은 거장 이전에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아들의 기억과 손길로 되살아난 이 집에서는 작품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예술가의 또 다른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단색화 열풍이 남긴 것
지난 21일 개관한 박서보 미술관은 살던 집이나 작업실을 개조한 공간은 아니다. 2019년 서울 연희동에 마련한 자택 겸 작업실인 일명 ‘기지(GIZI)’ 바로 옆에 새로운 미술관을 지었다. 가족의 거주 공간이기도 한 기지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작품 전시와 연구에 특화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지하 1층과 지상 2·3층 전시장으로 구성된 미술관은 박서보(1931~2023) 화백의 작품처럼 비움의 미학이 느껴지는 곳이다. 특히 지상 3층 화이트 큐브는 자연광을 극대화해 성전처럼 연출했다. 이곳에서는 박 화백이 타계 직전까지 작업한 3m 높이의 대형 백색 회화 3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개관한 박서보미술관 전경. 작가의 집이자 작업실이었던 '기지' 바로 옆 건물이다. 사진 박서보미술관
김창열·박서보·윤형근의 공통점 중 하나는 세계 미술시장을 달군 한국 단색화 열풍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이어왔지만 이들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지금과 같은 위상을 얻은 것은 2010년 이후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작품 가격이 오르고 해외 유수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가 이어지면서 작품뿐 아니라 작가가 남긴 기록과 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연구할 필요성도 커졌다.
박서보미술관 3층에는 3m 높이의 대형 '묘법' 회화 세 개가 설치되어 있다. 자연광이 극대화되는 공간을 통해 작가가 추구한 '백색의 미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소진 기자
작가를 기억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작가 미술관이 주로 출생지나 고향에 건물을 짓는 ‘기념관’ 형태였다면, 최근에는 작가가 실제 생활하고 작업했던 공간과 그곳에 남은 흔적까지 하나의 아카이브로 바라본다. 유족과 재단 역시 작품을 소장·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가 남긴 자료와 생전 기록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아카이빙의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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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관람객의 눈높이도 이런 흐름과 맞물린다. 최근 국내 미술관 관람 수요가 커지면서 유명 작품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의 삶과 작품이 탄생한 배경까지 경험하려는 관람객이 늘고 있다. 미술관이 일부 애호가를 위한 공간에서 일상적인 문화 여가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람객의 시선 역시 작품에서 작품이 태어난 장소로 확장하고 있다.
심상용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는 “해외 사례를 보면 작가의 집을 미술관으로 조성할 때 건축의 시대적 양식이나 역사적 의미에 따라 그 공간 자체가 문화재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면서도 “최근 생겨나는 개인 미술관들이 사적인 기념 공간을 넘어 공공성을 확보하려면 사회적 공론화와 심의 과정 등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b.플레이스
“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의 태도와 세계관을 담으니까요.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