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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내 인생의 짜장면

Chicago

2026.08.2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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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

손헌수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생일이라고 어머니께서 오백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 손에 꼭 쥐여 주셨다. “시장에 가서 혼자 짜장면 한 그릇 사 먹고 오너라. 네가 아직 어려서 힘이 부족하니, 옆자리에 앉아 있는 어른에게 짜장면을 비벼 달라고 부탁하고.” 나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한달음에 시장까지 달려갔다. 짜장면집에 들어가 보니 어떤 아저씨가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딸아이의 짜장면을 비벼 주고 있었다. 나도 짜장면 한 그릇을 시킨 뒤,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대로 그 아저씨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아저씨, 제 짜장면도 좀 비벼 주실래요?” 아저씨는 흔쾌히 내 짜장면을 비벼 주셨다.  
 
나는 그 짜장면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처럼 먹었다.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생일에 짜장면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왜 생일인데도 우리 식구 모두가 짜장면집에 가서 함께 먹지 못했는지, 왜 어머니는 나를 혼자 보내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짜장면 한 그릇에 오백 원이었지만, 여자 혼자의 몸으로 다섯 자식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에게는 그 오백 원도 쉽게 쓸 수 없는 큰돈이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한 끼를 아껴 아들의 생일상을 차려 주셨던 것이다.
 
그 일이 있고 50년도 더 지난 지금, 올해는 모처럼 가족과도 떨어져 생일을 혼자 서울에서 보내게 되었다. 서울의 짜장면 가격은 50여 년 동안 열여덟 배나 올라 이제는 한 그릇에 9천 원을 받는다. 오랜만에 생일날 혼자 짜장면을 시켰다. 어린 시절처럼 깨끗이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이제는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고 내 손으로 짜장면을 비빌 수도 있고, 짜장면 값도 내가 번 돈으로 지불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어머니께 짜장면을 곱배기도 사드릴 수 있는데, 이 세상에 어머니는 더 이상 살아 계시지 않는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내게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혹시라도 엄마가 일찍 죽게 되면, 너는 아무 짜장면집이나 찾아가서 일을 시켜 달라고 해라. 배달을 하든 요리를 배우든,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면 식당이라 밥은 굶지 않을 게다. 그리고 주인에게 열심히 일할 테니 공부만 시켜 달라고 부탁해라. 가진 것이 없으니 너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어린 나에게는 무서운 말이었다. 어머니가 정말 일찍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가난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남겨 줄 수 있었던 가장 현실적인 생존 교육이었다. 어머니에게는 물려줄 재산도, 든든한 배경도 없었다. 대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실하게 해야 하고,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다행히 어머니는 다섯 자식을 모두 시집 장가 보내시고, 여든이 훨씬 넘어서 세상을 떠나셨다.
 
내 짜장면 이야기를 들은 한 동창은 나보다 더 슬픈 자신의 짜장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산꼭대기 집으로 이사하던 날이었단다. 형편이 어려웠던 친구 아버지는 이삿짐을 날라 주던 트럭 운전사에게 비용을 조금 깎는 대신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던 모양이다. 이삿짐을 모두 내린 뒤 운전사와 친구, 그리고 친구의 아버지까지 셋이 짜장면집에 갔단다. 친구의 아버지는 돈을 아끼기 위해 운전사에게만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해 드렸단다. 운전사 아저씨가 짜장면을 먹는 동안 친구는 옆에서 침만 꼴깍꼴깍 삼키면서 엽차만 계속마셨단다.
 
나는 생일에 혼자서라도 짜장면 한 그릇을 먹었지만, 그 친구는 눈앞에 있는 짜장면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으니 나보다 더 슬픈 짜장면 이야기다. 그 시절 짜장면은 그저 허기를 채우는 한 끼가 아니었다. 오래 전 나를 위해 자신의 한 끼를 포기했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아직 그런 분이 곁에 계신다면 그 분께, 만일 그런 분이 곁에 계시지 않는다면, 지금 내곁에 있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따뜻한 식사 한끼를 대접하기 바란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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