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개정 노동조합법(일명 노란봉투법)의 ‘쟁의 대상’을 어느 범위까지로 볼 것인지 시행지침을 통해 구체화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두 차례나 시행령·시행규칙을 포함한 기준 마련을 검토하라고 공개 지시했지만, 위법 논란과 노동계 반발 등을 우려해 지침 수준으로 타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월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노총 초청간담회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화하며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청와대는 언론 공지를 통해 “현장에 미치는 효과는 유사하지만 입법예고, 규제심사 등 3개월 이상 소요되는 시행령보다 현장에 즉시 적용 가능한 시행지침을 제정하고자 한다”며 “지침 적용 후 현장변화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할 경우 다른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노봉법은 쟁의 대상의 범위를 임금·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에 관한 것뿐 아니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까지로 넓히는 내용이다. 어디까지를 쟁의 대상으로 볼 것인지 노사 간 해석이 충돌해왔다. 모든 경영상 결정은 근로조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급기야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영업이익의 N% 성과급 요구에 이어 호남 반도체 투자 계획까지 교섭 의제로 삼겠다고 선언하면서 논란이 커지자, 이 대통령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것을 주문해왔다.
청와대는 시행지침으로 방침을 정한 표면적 이유로 현장 적용의 시급성을 내세웠다. 시행령으로 하더라도 위법 논란 등 불확실성이 여전한 데다 노동계만 자극할 수 있어 청와대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노동계는 “노봉법에 명시적인 위임조항이 없는데 시행령으로 쟁의 범위를 제한하는 건 행정권 남용이자 입법 무력화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6 노동절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이재명 대통령,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 김지형 경제사회노동위원장. 뉴스1
게다가 이 대통령은 그간 시행지침 쪽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모법에 위임 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어 시행령 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이 대통령은 “법에 없으니까 (시행령 등으로) 못 정한다, 그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법률의 위임이 없으면 못 하는 게 아니고, 법률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 법의 시행을 위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다”면서다.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도 “우리(행정부)는 입법을 단순히 집행하는 심부름꾼이 아니다. 시행령, 시행규칙, 노동부 지침으로 명확하게 미리 정해 놓는 게 좋겠다”고 주문했다.
노동부는 경영계와 노동계를 만나 내용을 설명하고,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다음 달 3일 시행지침을 공개할 예정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난 2월 마련한 해석지침보다 쟁의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는 데다, 앞으로 정부가 이런 기준을 가지고 노봉법을 시행하겠다는 의미로 시행지침이라고 한 것”이라며 “단순한 해석을 넘어 이렇게 시행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해석지침에는 사업 경영상 결정으로 정리해고, 전환배치가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데, 시행지침엔 더 구체적인 사례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침을 아무리 구체화하더라도 현장의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외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의 해석지침보다 강해 보이려고 시행지침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건 마찬가지”라며 “행정부 입장에 따라 언제든 변경될 수 있는 지침으로는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없고, 정공법인 보완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