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현지시간) 네팔·티베트 접경지대에서 대홍수가 발생한 지 이틀 만에 강의 상류에 토사 등이 쌓여 새로 생긴 ‘자연댐’의 붕괴가 시작됐다는 통보가 내려졌다. 강 수위가 오르면서 네팔 당국은 헬기 구조 작업을 중단했고 주민과 구조대는 고지대로 대피했다. 이번 홍수로 숨진 사람은 28일 오후 기준 584명, 실종자는 2482명으로 늘었다.
네팔 대홍수 사흘째인 28일(현지시간) 네팔 육군 소속 헬기가 구호물품을 싣고 카트만두 군 비행장에서 수해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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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상류 호수 넘쳐…주민·구조대 고지대로
28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네팔 경찰은 이날 티베트 쪽 산악지대 상류에 형성된 자연댐의 붕괴가 시작=돼 현장 구조대원들을 대피시켰다고 밝혔다. 현장 행정 책임자는 로이터통신에 “자연댐으로 생긴 호수의 물이 제방을 무너뜨렸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강 수위가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네팔 당국은 자연댐 범람 위험이 커지자 구조 작업을 90분간 중단하고 라수와에서 생존자를 찾던 헬기 운항도 멈췄다. 주민들은 다시 불어나는 강물을 피해 산비탈로 대피했다. 이후 강 수위 상승폭이 0.6m로 확인되면서 작업이 재개됐다.
중국 측 구조대원과 차량도 한때 안전지대로 철수했다가 당국이 위험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판단하면서 수색을 재개했다. 신화통신은 소방·구조대원 681명과 차량 113대가 현장에 도착해 고무보트와 드론 등을 활용한 수색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티베트자치구 르카쩌 재해 현장. 사진 중국중앙TV(CCTV) 캡처
문제의 자연댐은 지난 26일 대홍수 당시 무너져 내린 흙과 바위가 강을 막으면서 형성됐다. 중국 기술진이 전날(27일) 측정했을 때 호수는 길이 약 150m, 깊이 40~50m 규모에 150만~200만㎥의 물이 고여 있었지만 이날 저수량은 250만㎥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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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250만㎥…9월 1일 전후가 최대 고비
중국 당국은 앞서 지난 27일부터 사흘 동안 올림픽 규격 수영장 약 1200개 분량인 300만㎥의 물이 호수로 들어와 다음 달 1일쯤 물 유입량이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앞으로 일주일가량 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보되면서 자연댐이 완전히 무너질 위험도 커졌다. 중국 당국은 자연댐의 낮은 부분을 파 배수로를 내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호수 주변이 깎아지른 절벽인 데다 물이 빠르게 불어나 현장 접근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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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붕괴가 시속 180㎞ 급류로…30분 만에 수위 9m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최초 홍수가 발생했을 때 시속 180㎞에 달하는 초고속 물폭탄이 기존 조기 경보망을 사실상 무력화해 피해가 커졌다고 진단했다. 하천 관측소가 급류를 감지했을 때는 이미 주민들이 대피할 시점을 놓쳤다는 의미다.
지난 26일 오전 8시37분쯤 네팔 랑탕리룽봉 북사면 해발 약 5127m 빙하 아랫부분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첫 번째 대홍수는 얼음과 바위가 급류로 바뀌면서 파괴력이 커졌다. 무너진 빙하는 내려오는 동안 흙과 물에 섞여 초속 약 50m, 시속 180㎞에 가까운 속도로 계곡을 따라 이동했다. 빙하 붕괴와 토석류의 충격은 지진파로 측정됐을 만큼 컸다.
국제산악통합개발센터(ICIMOD)에 따르면 하류 강의 수위는 30분 만에 7~9m 치솟았다. 급류는 이후에도 100㎞ 넘게 하류로 내려가며 도로, 다리, 수력발전 시설을 휩쓸었다.
기존 경보망은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NYT는 “네팔의 경보 체계가 강·호수의 수위 상승 감지에 맞춰져 있어 산사태로 순식간에 발생한 홍수에는 대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급류가 산 위에서 관측소까지 도달하는 데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존자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 주민은 로이터통신에 “멀리서 볼 때는 강이 작아 보였는데 갑자기 넘치기 시작했다”며 “홍수가 폭탄처럼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NYT는 굉음을 듣고 산비탈로 달아나 목숨을 건졌지만 아내와 두 딸을 구하지 못한 주민의 사연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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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500명 넘어…한국인 9명 사흘째 연락두절
인명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AP통신은 네팔 사망자가 579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중국 티베트에서도 5명이 숨져 양측 사망자는 최소 584명으로 집계됐다.
네팔 실종자는 기존 977명에서 1924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의 신고가 추가되면서 집계가 급증했다는 게 네팔 당국의 설명이다. 중국 티베트 실종자 558명을 합치면 양측 실종자는 2482명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네팔에서 실종된 관광객 667명 중 외국인은 31개국 54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여기엔 인도인 최소 288명, 중국인 약 100명, 미국인 최소 65명, 우크라이나인 53명, 말레이시아인 51~55명, 영국인 33명 등이 포함됐다.
네팔 당국은 군과 경찰 등 인력 3만여 명과 헬기를 투입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다리 35개 이상이 파괴됐고 도로 약 40㎞가 유실되거나 파손돼 구조대의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댐 붕괴로 수색 작업은 더 지체될 것으로 보인다.
28일(현지시간)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 대학 병원에서 실종자를 찾는 시민들이 전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연댐 범람으로 수색이 중단되기 전에도 네팔군은 수력발전소 터널에 갇힌 근로자와 주민 350명을 구조한 상태에서 철수했다. 터널 안에는 100여 명이 더 남아 있다고 한다.
라수와 지역 수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한 두산에너빌리티 직원 6명과 한국남동발전 직원 3명 등 한국인 9명의 소재도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던 숙소와 사무실 건물이 홍수로 유실됐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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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고산지대 바위·얼음 불안정 키워
이번 재난을 놓고 기후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사이먼 콕스 뉴질랜드 지구과학연구소 수석과학자를 인용해 “기후변화가 고산지대의 바위와 얼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조건을 만들고 있다”고 짚었다.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줄면 가파른 산비탈을 받치던 얼음이 약해져 대규모 붕괴 가능성이 커진다는 원리다.
땅이 얼었다 녹는 과정과 강수 양상이 달라지는 점도 산비탈을 약하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2023년 네팔을 방문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때 “네팔 고산지대의 얼음이 30여 년 사이 약 3분의 1 줄었다”며 “네팔 빙하가 녹는 속도가 직전 10년 동안 그 이전 10년보다 65% 빨라졌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