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문장 너머의 세계' 팝업 스토어에서 관람객이 책을 고르고 있다. 오삼권 기자
지난 26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3층 한쪽에 마련된 277㎡(약 84평) 크기 부스에서 ‘문장 너머의 세계’란 이름으로 팝업 스토어가 열렸다. 출판사 민음사와 캐릭터 브랜드 오늘의귀여움이 함께 연 것으로,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한 각종 도서와 책갈피·키링 등이 전시돼 있었다. 현장엔 관람객 수십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입장 대기 줄이 행사장 주변을 빙 둘러 늘어섰다. 순서를 기다리던 이모(20·여)씨는 “소셜 미디어(SNS)에서 세계문학전집 한정판 표지를 보고 사러 왔다”며 “오래 기다리더라도 꼭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텍스트 힙(Text Hip·활자 인쇄물을 읽는 것을 멋으로 여기는 유행)’ 열풍이 번지면서 독서 굿즈(goods·기획상품)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20·30세대 소비자 중 일부는 서점·팝업스토어 등을 종횡무진 다니면서 책과 관련된 상품을 사들이고 있다. 이날 오후 1시쯤 민음사 팝업스토어를 찾은 30대 남성 오모씨는 “현장 대기 번호로 743번을 받았는데, 앞에 529팀이 대기하고 있다고 안내받았다”며 “이 정도로 사람이 몰릴 줄은 몰랐다”고 했다. 행사 관계자는 “지난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열었던 팝업 스토어가 큰 호응을 얻어 이번에 확대해서 다시 진행하는 것”이라며 “하루에 약 1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라고 했다.
지난 26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문장 너머의 세계' 팝업 스토어에서 관람객 대기 줄이 늘어선 모습. 오삼권 기자
편의점에선 무작위 종류의 책갈피가 들어있는 ‘세계문학 빵’이 유행이다. GS25는 지난 21일 안톤 체호프의 소설 ‘사랑에 대하여’ 등 책 표지를 딴 문학 빵 2종을 내놓았는데, 출시 3일 만에 전체 납품 물량의 약 95%인 5만개가 팔려 나가며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서울 마포구의 한 편의점 점주 A씨는 “오전 8시에 4개가 들어왔는데, 1시간 전부터 줄 서서 기다리던 손님 중 한 명이 다 사가려고 하길래 ‘이러시면 곤란하다’고 겨우 말렸다”며 “하루에 2~3개밖에 안 들어오는상황이라 손님들과 실랑이가 벌어져 골치 아프다”고 말했다.
GS25가 지난 21일 출시한 '세계문학 빵'. 사진 GS25
소셜미디어(SNS)에선 문학빵을 구한 사용자들이 잇달아 ‘인증 샷’을 올리고 있다. 빵을 구매한 뒤 봉지를 뜯어 무작위 책갈피를 확인하는 이른바 ‘책갈피 랜덤깡’도 인기다. 한 SNS 사용자는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 표지를 딴 빵 구매 사진을 올리며 “빵 7개를 샀는데, 책갈피 5개가 중복이다. 늑대가 아니라 내가 울고 싶다”고 했다. 다른 이용자는 “빵 공장이 일요일엔 쉬어서 월요일엔 신규 입고가 없을 수도 있다”는 등 빵 구매 팁을 공유하기도 했다.
지난 26일 서울역 인근 GS25 편의점 세계문학 빵 재고가 0으로 표시된 모습. 사진 우리동네GS 앱 캡처
텍스트 힙 열풍이 번지면서 골목 상권 지도도 바뀌는 모습이다. 젊은 층이 주로 찾던 술집이나 PC방 대신 서점과 장난감 가게 등이 늘어나고 있는 것. 국세청의 100대 생활업종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전국 서점은 1만193개로 전년 동기(9893) 대비 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문구·완구 등을 파는 장난감가게는 3323개에서 3996개로 20.3% 늘었다. 반면 간이주점과 호프주점은 각각 9.2%, 9.1% 줄었고, PC방도 5.46% 줄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SNS에서 인기 있는 물건을 사고, 자신이 산 물건을 다시 SNS에 올리는 등 취향 소비를 놀이로 여기는 문화가 퍼진 것”이라며 “과거엔 사람들이 술집 등 여럿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많이 찾았지만, 최근엔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소비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상권 모습도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