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 저 앞에 걸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왠지 낯이 익다. 나는 멀리서 그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갑자기, 좁다란 골목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그는 남자와 내 사이에 서더니, 남자의 뒤를 밟기 시작한다.
싸늘한 기운. 빨리 남자에게 뛰어가 피하라고 말해줘야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두 다리는 한없이 무겁다. 발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반면에 골목에서 나온 그는 바람처럼 움직인다. 어느새 남자의 뒤로 바싹 붙었다. 위험하다.
남자를 향해 “피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이젠 혓바닥조차 말라붙었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번쩍.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에 둥근 물체가 반사됐다.
남자의 뒤에 붙어선 낯선 이의 품에서 나온 쇠공이다. 아, 안돼!
퍽!
피가 솟구쳐 오른다. 남자가 쓰러졌다.
남자를 해친 그는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져버렸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경찰이 쓰러진 남자를 흔든다. 이제야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상우 아빠다.
" 아악! "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은 땀에 흥건하게 젖었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이부자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다. 벌써 몇 번째 같은 꿈을 꾸는지 모른다.
이 가족의 고통은 내가 직접 겪은 일인 양 나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의사에게 전해 들은 뜻밖의 병명.
약 처방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서며, 나는 10년 전 상우 가족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 장례식에서 만난 여덟 살 상주
그날, 여덟 살 상우는 검은 상복 차림이었다. 작은 팔에 둘러진 상주 완장이 처연했다.
장례식장에서 아이는 영정 사진 속 아빠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낯선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엄마를 불안한 듯 번갈아 쳐다봤다.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상우 엄마는 온몸의 기운이 모두 눈물로 빠져 나가버린 듯 소진된 모습이었다.
# 말을 잃은 아이, 오열하는 엄마
자신은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한순간 아빠를 잃어버린 아이. 그 고통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이사와 전학을 하며 익숙한 공간을 모두 상실했다. 이 아이가 아빠를, 그날의 일을 입에 올리는 건 감당하기 힘든 극도의 고통일 것이다.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가면을 쓴 채 하루하루 버티는 상우의 아픔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내면에 고통과 슬픔을 가둬버린 상우와 달리, 상우 엄마는 분노와 억울함을 터뜨리곤 했다. 그 대상은 종종 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