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지난 12일(한국시간) 홈팬들에게 ‘교황 모자’ 4만개를 제작해 배포했다. 교황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동그란 모자가 아니라 미사 집전 때 사용하는 ‘주교관’ 형태로 화이트삭스를 상징하는 양말 문양이 새겨진 응원 물품이다. 이 모자가 대서양을 건너 바티칸에 있는 교황 레오 14세에게 전달돼 화제다.
미국 프로야구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소셜미디어 엑스에 교황에게 응원 물품을 전달한 사진을 게시했다. 사진 엑스 캡처
화이트삭스는 28일 공식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화이트삭스 교황 모자가 공식적으로 바티칸에 입성했다”며 교황 레오 14세의 사진을 공개했다. 교황은 시카고 출신인 톰 매카시 신부 곁에서 응원용 교황 모자를 손에 든 채 미소를 지었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남부 돌턴 출신으로 본명이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인 교황은 어린 시절부터 화이트삭스의 팬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12일 신시내티와 경기에서 홈런을 친 후 교황 모자를 쓰고 세리머니를 하는 미겔 바르가스. AP=연합뉴스
지난해 5월 레오 14세가 가톨릭의 수장으로 선출된 이후 화이트삭스는 교황과의 각별한 인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교황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과 모자를 선물하는 건 기본. 홈구장에는 교황의 벽화를 만들고 교황을 기리는 미사를 열었다. 지난 6월에는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포수였던 A.J. 피어진스키가 1차전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야구공을 교황에게 헌정했다. 교황은 21년 전 이 경기를 현장에서 관람했다. 구단은 좌석 부근을 교황의 모습이 담긴 그래픽으로 장식했다. ‘교황 모자의 날’ 이벤트가 열린 12일 경기에는 무려 3만8113명이 경기장을 찾을 정도로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성적도 좋다. 지난 11일 ‘교황 모자의 날’ 경기부터 11승 7패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24년과 2025년에는 2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최하위였는데, 이번 시즌에는 72승 63패로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다. 화이트삭스는 30일 열린 미네소타 트위스와의 원정경기에서도 3-2로 승리하며 4연승을 거뒀다.
교황 레오 14세가 지난해 6월 바티칸 성바오로 광장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모자를 쓴 채 신자들과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교황이 스포츠를 통해 신자들과 소통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 세계 14억명에 이르는 신자를 대표하는 종교 지도자로서 중립을 지켜야 해 특정 국가나 팀을 공개적으로 응원하지는 않지만 바티칸을 방문한 스포츠 스타나 구단으로부터 유니폼 등을 전달받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의 클럽팀 산로렌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산로센소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축구를 하도록 성당 뒤뜰을 내준 게 시발점이 된 팀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학생 시절 축구 선수로 활약했고, 교황이 된 이후에도 축구 중계를 즐겨 관람했다. 자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와 그 뒤를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두 교황’에서는 축구를 소재로 두 사람이 농담을 나누는 장면도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