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회사로 찾아왔다. 종일 분유도 먹지 않고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고 했다. 회사 앞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급히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이후로도 근무 중 카페에서, 화장실에서 수유가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릴 적 가난으로 돌아갈 순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부업을 했다. 만 6세가 되면서부터 집안일은 물론 두 살 어린 동생까지 돌봐야 했다. 가장 무서웠던 건 번개탄에 불을 붙이는 일이었다. 종이를 둘둘 말아 가스레인지의 불을 붙이고, 그 불씨를 들고 와 번개탄에 옮겼다. 금세 번지는 불길이 손에 닿을까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집 밖 재래식 화장실을 썼다. 영화 제목처럼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저절로 알게 됐다. 돈이 없다는 건, 인생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적어도 내 아이들에겐,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처음 1000만원으로 투자를 시작해 7년 만에 10억원을 만들었다. 덕분에 직장생활 20년차에 나는 퇴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복리의 힘으로 지금 순자산은 40억원까지 늘어났다. 두 아이 계좌에 넣어준 200만원어치 주식은 각각 1억7000만원이 됐다.
흙수저 계약직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내가 어떻게 40억원대의 자산을 일군 ‘파이어 맘’이 되었냐고? 지금부터 그 여정을 여러분께 세세히 공개한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부동산 투자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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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대신 주식 산 이유
」
김 작가는 “늘 돈에 쫓기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전북 전주에서 상경해 고시원에 살면서 계약직으로 일했고, 대학원 졸업 이후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사회초년생 시절 결혼해서 학자금 대출과 내 집 마련 부담, 육아까지 겹친 탓에 항상 여유가 없었어요. 재테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서, 문제는 소득이 아니라 관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상조 기자
Q : 1000만원으로 어떻게 10억원을 모으게 됐나.
직장생활로 모은 돈 중 1000만원으로 2013년 첫 투자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대부분 손실이었다. 순자산 3억원까지는 투자 수익보다 일해서 모은 돈이 더 많았다. 굴하지 않고 월급을 받으면 습관처럼 주식 계좌로 돈을 옮겼다. 그러다 투자 방향을 바꾸면서 자산이 빠르게 늘어났다.
Q : 10억원을 모으고 바로 퇴사를 결정한 건가.
1년 정도 더 직장을 다녔다. 당장 그만둬도 되는지, 다른 일을 해볼지 스스로 계속 점검했다. 엑셀에 보유 자산과 1년 동안 모을 수 있는 돈, 기대수익률을 넣어 조기 은퇴 이후에도 자산이 유지될 수 있는지 계산했다. 그 결과 남편의 근로소득과 내 자본소득이면 4인 가구가 그럭저럭 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자산 대부분은 주식으로 운용 중이고, 집은 장기 전세로 거주하고 있다.
Q : 한국 사회에선 ‘내 집 마련’이 자산 형성의 기본 공식처럼 여겨지는데, 자산 대부분을 주식에 둔 이유는.
과거 부동산 투자 실패로 1억원대 빚을 졌다. 부동산은 한번 실패하면 손실 규모가 크고 회복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히 대출을 크게 끼고 집을 사면 이자와 원금 부담 때문에 집값이 올라도 회사를 그만두기 어렵다.
나는 내 삶의 자유(퇴사)를 우선순위에 뒀기 때문에 주식에 집중했다. 유동성도 중요했다. 부동산은 화장실 한 칸을 떼어 팔 수 없지만, 주식은 내가 필요한 만큼만 쪼개서 팔 수 있지 않나.
하지만 그는 투자 실패도 맛봤다.
" “국내 종목 중 카카오 투자로 신입사원 연봉 수준의 손실을 봤다. 가장 뼈아프다.” "
대신 이때부터 절대 하지 않는 ‘한 가지 원칙’이 생겼다. 손실을 보지 않는 비결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