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케빈 워시 신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취임 선서식에서 워시 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 5월 취임 이후 가장 분명한 ‘매파’(통화 긴축 선호) 메시지를 내놨다.
워시 의장은 지난 28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 연설에서 “기조적인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향해 분명하고 충분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둔화하지 않으면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최근 물가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스럽다”고 평가했다. 연준이 중요하게 보는 물가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3.7% 오르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3.4%를 기록한 점 등을 거론하면서다. Fed의 물가상승률 목표인 2%에 대해서도 “확고하고 고정된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설은 워시가 그동안 표방해온 ‘조용한 연준’ 기조를 감안할 때, 상당히 구체적이라는 평가다. 그는 시장에 금리 경로를 미리 알리는 ‘포워드 가이던스’가 시장 가격을 왜곡할 수 있다며 대체로 말을 아껴왔다. 하지만 한켠에선 Fed의 침묵이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연설은 워시가 취임한 이후 가장 실질적인 내용을 담았다”며 “투자자들은 Fed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보도했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 7월 28일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준비은행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9월 0.25%포인트 금리 인상 확률은 연설 전 35.4%에서 30일 57.0%로 뛰었다. 동결 가능성은 43.0%로 낮아졌다. 통화 정책에 민감한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지난 28일 0.118%포인트 급등한 연 4.348%로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워시가 ‘강한 신호’를 내놓은 만큼 실제 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으면, 물가 대응 의지를 둘러싼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디티야 바브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미국 경제조사 책임자는 “8월 고용·물가 지표가 매우 약하게 나오지 않는 한 9월에 금리를 올려야 할 책임이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애덤 포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도 “9월에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 현실화할 경우 워시를 직접 Fed 의장으로 발탁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충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산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Fed에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해왔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워시는 자신의 목표와 의도에 명확한 선을 그었다”며 “이는 경제지표나 그에 따른 결과와 관계없이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트럼프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워시가 금리를 올리면 트럼프 대통령과 맞서야 하고, 동결하면 물가 대응 의지와 시장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는 딜레마 상황에 놓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리스 옵스펠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그는 여러 곳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어느 쪽을 선택해도 이길 수 없는(no-win) 상황”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