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31일 0시를 넘긴 때였지만 프랑스 파리에 있는 호텔 리츠 파리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다이애나 스펜서(사진) 전 영국 왕세자빈을 따라 몰려든 파파라치들 때문이었다. 이날 0시 20분 다이애나는 연인 도디 알파예드와 함께 호텔이 제공한 벤츠를 타고 샹젤리제에 있는 도디의 아파트로 출발했다. 약물에 취한 운전사는 시속 110㎞까지 급가속했고, 센강변 알마교 지하차도에서 접촉사고를 낸 후 도로 중앙분리 기둥과 충돌하여 터널 중간에 멈췄다. 이 사고로 도디와 운전사는 즉사했고 다이애나의 경호원은 큰 부상을 입었다. 중태에 빠진 다이애나는 병원으로 이송된 후 사망 선고를 받았다. 향년 36세의 짧은 생이었다.
다이애나 허버트 스펜서는 영국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집안이 좋고 용모가 단정한 그는 1981년 19세의 나이로 찰스 왕세자와 약혼했고, 5개월 뒤인 1981년 7월 29일 스무 살의 왕세자빈이 되었다. 단숨에 영국을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찰스는 결혼 전부터 교제해온 카밀라 파커 볼스(현 영국 왕비)와 혼외 관계를 지속했다. 어린 시절 부모의 가정불화에 시달렸던 다이애나로서는 더욱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1995년 찰스가 방송을 통해 불륜을 인정하고, 이듬해 다이애나가 같은 방식으로 자신 또한 연인이 있음을 밝히면서, ‘세기의 결혼’은 파국으로 향했다. 왕세자 부부의 이혼은 필연이었다.
다이애나는 법적 구속에서 벗어났지만 대중의 관심이라는 감옥에서 나올 수는 없었다. 당시 영국은 황색 언론의 전성기였다. 영국 왕실을 무대로 펼쳐지는 ‘막장 드라마’를 중계하기 위해 다이애나의 사진을 비싸게 사들였고 파파라치들은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달려들었다. 그로부터 29년이 흘렀지만 유명인사의 사생활을 둘러싼 대중의 관심과 흥분, 논란은 여전하다. 스마트폰과 SNS의 보급은 파파라치라는 직업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모두가 파파라치 노릇을 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