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조희대(사진)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을 반려하면서 재제청 방식을 둘러싼 문제가 청와대와 대법원 간 갈등의 또 다른 축으로 부상했다.
청와대는 사실상 기존 대법관후보추천위가 추천한 3인(김민기·박순영·윤성식 후보) 중에서 1명을 새로 정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줬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28일 브리핑에서 ‘추천위를 다시 꾸려야 한다고 보나’라는 취재진 질문에 “추천위의 추천 내용을 존중해 최대한 신속히 재제청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중에서도 청와대에서 1순위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진 김민기 고법판사를 제청하라고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이번 제청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라는 국민적 요청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성 법관인 김민기 고법판사를 제청하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조 대법원장의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원점에서부터 후보 천거와 추천위 구성을 다시 시작하는 방안이다. 2012년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가 사퇴하자 2주 만에 추천위를 새로 꾸리고 천거 절차부터 다시 시작한 선례가 있다.
두 번째 방안은 청와대 요구대로 3명의 후보 중 1명을 제청하는 것이다. 다만 이 방안은 현행 법원조직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있다. 법원조직법 41조의2 2항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때마다” 추천위를 꾸리도록 했다. 앞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청와대에 결정 보류를 요청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24일 “정부는 결정을 보류하고 국회는 법적 맹점을 개정해서 꼼수를 막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이 방안을 택할 경우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재제청 요구를 반복해 후보자를 소거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인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천위와 무관하게 제3의 인물을 임명 제청하는 방안도 있다. 법원조직법은 추천위 추천 결과에 구속력을 부여하지 않고 “대법원장은 제청 시 추천위의 추천 내용을 존중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2011년 대법관후보추천위 도입 이후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대법원장에게는 모험이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조직법의 규정과 앞선 사례를 고려할 때 대법원이 추천위 재구성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을 거부한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저서 『가인(街人) 김병로』에 담긴 일화에 따르면 1958년 1월 김동현 전 대법관이 대법원장·대법관·고등법원장으로 구성된 법관회의에서 11표 중 9표를 얻어 대법원장 후보로 제청됐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이우익 자유당 경북도당위원장을 대법원장으로 제청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법원 내부에선 ‘대통령의 임명권 남용’이란 비판이 커졌고, 당시 대법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김두일 전 대법관은 이 전 대통령을 찾아가 이우익 위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부적격인 사유를 대면 설명했다. 이후 사법부는 조용순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 후보로 재제청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2차 제청까지 거부했고, 자유당은 법관회의 제청 절차 없이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곧장 임명할 수 있도록 법원조직법 개정을 시도했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일제히 반발한 이후에야 자유당은 법 개정 시도를 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