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부 넘게 팔린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번역본을 내놓은 고전학자가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 작품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번역가는 펜실베이니아대 고전학과 에밀리 윌슨 교수다. 윌슨 교수는 2017년 '오디세이아' 영어 번역본을 출간해 주목받았다. 여성 번역가가 내놓은 최초의 호메로스 주요 서사시 완역본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윌슨 교수는 28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작업은 완전한 재번역”이라며 “기존 판을 수정하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현재 작업은 절반가량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성공을 거둔 번역본을 동일한 번역가가 10년도 지나지 않아 전면 재번역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번역가협회 문학 부문의 케이트 다임링은 “비슷한 선례를 떠올리기 어렵다”고 전했다.
윌슨 교수의 기존 번역본은 현재까지 1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호메로스의 고전을 현대 독자가 읽기 쉽고 생생한 영어로 옮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이 주목받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일각에서는 윌슨 교수가 원작을 지나치게 현대적인 시각으로 해석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기에 일부 독자들이 그의 번역을 두고 과도한 PC주의, 이른바 ‘워크(woke)’ 성향을 띤다고 공격하면서 진보와 보수 진영 간 문화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가 다시 번역에 나선 이유는 자신의 기존 작업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노예(slave)’라는 단어를 남용한 점을 들었다. 고대 그리스어에는 서로 다른 범주의 노예 신분을 가리키는 각기 다른 용어가 존재했으나, 기존 번역에서는 이를 충분히 구별해 반영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윌슨 교수는 번역 방식 자체도 2017년보다 정교해졌다고 밝혔다. 새 번역본은 기존 판보다 길어질 전망이다. 호메로스 작품 속 서로 다른 계층과 사회적 세계도 더욱 세밀하게 반영할 계획이다.
다만 출판사 내부에서도 재번역 결정은 “매우 논쟁적인 사안이었다”고 윌슨 교수는 설명했다. 동일한 번역가의 최신 번역본 두 개가 동시에 존재할 경우 대학 등에서 작품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어서다.
윌슨 교수의 번역본은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아'가 개봉하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놀란 감독은 윌슨 번역본의 첫 문장인 ‘복잡한 한 남자에 대해 내게 말해줘(Tell me about a complicated man)’에서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윌슨 교수의 영화 평가는 냉정했다. 그는 런던리뷰오브북스 기고문에서 놀란의 영화를 과장되고 피상적이며 때로는 일관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한편 윌슨 교수는 기존 번역의 유명한 첫 문장은 새 판에서도 “아마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