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는 회색 진흙투성이였다. 지난 29일 오후(현지시간) 찾아간 네팔 바그마티주 비두르 여기저기엔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바위들, 건축물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하늘에는 구조 헬기가 쉼 없이 날아다녔다.
홍수로 트리슐리강이 범람하면서 마을은 통째로 사라졌다. 홍수 발생 나흘째인 이날, 주민들은 30도가 넘는 폭염에도 그늘막 하나 없는 곳에서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거나 침수된 집이나 진흙 속에서 생필품을 건지고 있었다. 주민 락슈미(48)는 침수된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지랑 티셔츠 한 벌씩만 가지고 집을 겨우겨우 빠져나왔다”며 “아버지와 딸아이 등 가족 6명이 지내는 집과 내가 30년 동안 지낸 마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며 눈물을 훔쳤다.
비두르는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북쪽으로 약 70㎞ 떨어져 있어 차로 약 3시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다. 이곳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한국인 직원들이 실종된 어퍼트리슐리(UT)-1 수력발전소 현장 등 피해가 큰 지역이 나오지만, 도로가 유실돼 접근이 어려운 상태다.
29일 네팔 트리슐리 군사기지 앞에서 프리야 카렐이 두산에너빌리티 소속 동생을 찾는 전단지를 들고 있다. 변민철 기자
구조 거점인 트리슐리 군사기지 앞에는 실종자를 찾는 사람 수백 명이 모였다. 한쪽 벽면에는 이름이 빼곡히 적힌 실종자 명단이 붙어 있었다. 동생을 찾는 전단지를 들고 있던 프리야 카렐(36·여)은 취재진에게 “Korean?(한국인)”이라고 묻더니 이내 “내 동생이 두산이 짓는 발전소에 다니다 홍수에 실종됐다”고 울먹였다. 그는 “내 동생이 아직 그곳에 있다고 한국에 꼭 알려 달라”고 호소했다.
실종자를 찾는 인파는 수도 카트만두의 대형 병원에도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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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끝까지 할퀴고 간 홍수…시신 240㎞ 떠내려갔다
29일(현지시간)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대 교육병원(TUTH)에서 희생자 가족이 울고 있다. [EPA=연합뉴스]
다친 가족이 이송됐는지 확인하거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병원에 모인 것이다. 트리부반대 교육병원 앞에는 사진·이름과 함께 ‘MISSING’이 적힌 전단지도 수십 장 붙어 있었다. 가족을 찾지 못한 이들은 서로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아홉 살 아들과 병원 앞을 서성이던 션 주는 “여동생과 연락이 닿지 않아서 왔다”고 슬퍼했다. 병원의 다른 벽면에는 홍수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시신 사진과 이름이 적힌 전단지가 여러 장 걸려 있었다. 희생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했다. 시신 사진을 살피던 라디카는 “홍수로 어머니·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동생은 아예 찾지 못해 어제부터 병원에 와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30일 오전 네팔 대홍수 피해 지역 중 하나인 바그마티주 다딩에서 만난 홈 바하두르(66)는 진흙에 파묻힌 집을 바라보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40년 넘게 아내와 살던 곳이었다고 했다. 이곳은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난장판 그 자체였다. 다딩은 네팔·중국 국경에서 발생한 홍수의 하류 지역으로, 수도 카트만두와는 비교적 가까운 도시다. 이 지역도 홍수로 고립된 라수와나 누와코트 지역 못지않게 큰 피해를 보았다.
강변에 지어진 건물은 대부분 물에 휩쓸려서 온전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침수된 차량도 곳곳에서 보였다. 홈 바하두르 부부의 집도 홍수에 침수됐다. 회색 진흙이 온 집 안을 덮었고, 부부는 현금과 옷가지 등 살림살이를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대피했다. 그는 그런데도 나흘째 집 근처를 떠나지 않고 있다. 홈 바하두르는 “부인을 이곳에서 만났고, 아이들과 함께 살았는데 나는 갈 곳이 없다”며 “이곳에 다시 와야 하기 때문에 사위들이 복구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돼 헬기로 이송된 생존자들(왼쪽 사진부터). [로이터=연합뉴스]
대피했던 주민들은 늦게라도 가재도구나 옷가지를 찾으러 마을로 속속 돌아오고 있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샨카르(47)는 “팔아야 할 물건이 모두 물에 잠겼는데 제조사에 보내면 환불이라도 해줄까 싶어 닦고 있다”며 “30년간 우리 가족을 지켜준 가게인데, 막막하다”고 했다. 전날 현지에 내린 비의 영향 등으로 강 수위가 다시 높아지면서 또다시 수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주민들 사이에서 다시 커졌다. 바산타(47)는 “어제보다 강 수위가 훨씬 높아졌다”며 “아직 복구를 하나도 하지 못했는데 또 홍수가 오면 정말 큰일”이라고 걱정했다.
이번 대규모 홍수로 네팔뿐 아니라 240㎞(최초 홍수 발생지 기준) 떨어진 인접국 인도에서도 시신이 발견되고 있다. 라수와에서 시작한 홍수가 트리슐리강을 거쳐 인도 간다크강까지 이어지면서 차를 타고서도 몇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먼 지역까지 희생자가 떠밀려간 것이다.
이번 네팔 참사는 급변하는 히말라야의 산악 환경이 불러온 기후재난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고산지역의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잠재적인 붕괴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학자들이 주목하는 건 고산 지대의 ‘천연 접착제’ 역할을 하던 고고도 영구동토층(Permafrost)의 붕괴다. 고산지대에는 토양과 암석, 얼음 등이 뒤섞인 영구동토층이 형성돼 있다. 그런데 기온이 오르면서 암반 틈새를 단단히 붙잡아두던 영구동토층의 빙결 마찰력이 급격히 감소해 산사태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원상 극지연구소 빙하지권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온난화가 사면을 지탱하던 얼음의 양을 감소시키고, 얼고 녹는 주기를 변화시키면서 고산 사면의 안정성을 지속적으로 낮추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