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전 10시 52분(중국시간). 네팔과 중국 시짱(티베트) 사이 국경선에 인접한 랑탕리룽(7234m) 북사면에서 떨어져 나온 빙하·암석이 계곡으로 쏟아졌다. 이 물질은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토석류(debris flow)로 변했고, 약 6~7분 만에 22㎞를 흘러 중국 지룽국경검문소를 덮쳤다. 6층 규모(높이 20~25m 추정) 건물을 집어삼킨 거대한 파도였다. 이는 국경검문소를 비추는 산 능선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히말라야 8000m 14좌를 완등한 김재수(65) 대장을 포함해 다수의 산악인들도 “처음엔 AI가 만든 영상인 줄 알았다”고 할 만큼 전례 없는 규모의 ‘토석류 쓰나미’였다. 히말라야 빙하가 녹고 있으며 그로 인한 재난이 따를 것이라는 경고는 계속 있었지만, 이 영상만큼 강렬한 메시지는 없었다. 토석류는 얼음과 암석, 흙 등이 물과 섞여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현상이다.
랑탕리룽 빙하·암석 붕괴와 토석류 흐름. 사진 구글 어스
엄청난 규모의 토석류는 어디에서 왔을까? 당시 폭우는 내리지 않았다. 랑탕리룽에서 떨어진 암석·빙하의 규모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지만, 거리는 22㎞나 떨어져 있었다. 여러 관측이 잇따르는 가운데, 대규모 붕괴를 일으킨 물리적 규모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영국 런던대(UCL)의 지진학자 스티븐 힉스는 28일 뉴욕타임스(NYT)에 랑탕리룽 붕괴 과정에서 움직인 질량이 4억t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붕괴가 일으킨 지진학적 신호를 분석해 산사면 붕괴의 힘을 추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질량을 계산한 것이다. 미국지질조사국(USGS)도 이 붕괴 과정에서 규모 5.2에 해당하는 지진학적 신호가 기록됐다고 분석했다. 이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약 1000개의 질량이 한꺼번에 강 계곡으로 쏟아진 것과 맞먹는다.
영국 과학미디어센터(SMC)가 29일 공개한 전문가 분석에서는 당시 암석·빙하의 부피가 최소 5000만㎥, 많게는 약 2억㎥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했다. 2억㎥는 올림픽 규격 수영장 약 8만개에 해당한다. 사라 볼턴 플리머스대 지구과학 교수는 이 물질이 산비탈을 따라 내려오면서 물과 퇴적물을 추가로 끌어들여 거대한 토석류와 홍수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두 숫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계산한 추정치지만 수치상 양립 가능하다. 2억㎥의 암석·빙하 물질이 4억t이라면 평균 밀도는 ㎥당 약 2000㎏이다. 암석과 얼음이 섞인 덩어리에서 가능한 범위다.
단, 떨어져 나온 빙하·암석의 부피가 2억㎥가 되려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이탈이 있어야 가능하다. 29일 마리아 샤게다노바 영국 레딩대 기후과학 교수는 최초 붕괴가 해발 약 5200m 고도에서 빙하와 그 아래 기반암이 함께 떨어져 나갔으며, 길이가 약 1~1.3㎞였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붕괴 전후 위성사진을 비교한 분석에서도 사면의 상당 부분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단, 지금까지 나온 수치는 모두 추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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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랑탕리룽을 무너뜨렸나
붕괴 전 랑탕리룽 북면(위)과 암석과 빙하가 무너진 후의 랑탕리룽 북면의 모습. [AFP=연합뉴스]
2015년 랑탕리룽 남사면에서도 대규모 암석·빙하·눈사태가 발생해 약 350명이 숨졌다. 당시에는 규모 7.8의 강진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번 랑탕리룽 붕괴 때는 지진이 없었다. 단순히 빙하가 녹았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도 설명이 부족하다. 랑탕 유역의 빙하가 장기간 빠르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지난 6월 영국·네팔 등의 연구진이 ‘글로벌 앤드 플래너터리 체인지(Global and Planetary Chang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랑탕 유역의 빙하 면적은 19세기 초반부터 2023년까지 약 41.5% 감소했다. 1964년 이후 감소 속도는 4배 이상 빨라졌고, 2000년대 이후에는 더 가팔라졌다. 하지만 빙하 감소가 이번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렇다면 온난화가 산 자체를 약하게 만들었을까. 산악지역 암반에는 수많은 균열과 절리가 있고, 이 틈을 얼음이 채우기도 한다. 얼음이 녹으면 암반을 붙잡던 힘이 약해져 사면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빙하가 후퇴하면서 이전까지 얼음에 덮여 있던 암벽이 노출되는 것도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번 붕괴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랑탕 일대는 급경사 산악지형과 균열·절리가 발달한 암반이 맞물려 있어 사면 붕괴에 취약한 지형이라는 분석도 있다.
붕괴 직전의 이상고온은 눈여겨볼 만하다. 영국 남극조사국(BAS)의 빙하학자 해미시 프리처드는 지난 27일 영국 과학미디어센터(SMC)에 사고 지점에서 약 10㎞ 떨어진 연구팀의 센서 자료를 근거로, 붕괴 이틀 전 지표면 온도가 최근 2년 사이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그는 높은 기온이 눈을 약화시키고 크레바스에 물을 채우며, 얼음과 암석을 붙잡고 있던 결합부를 녹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영구동토층 해빙도 원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영국 킬대 물리지리학 교수 리처드 워더는 지난 27일 가디언에 고산 암반의 균열을 채운 얼음이 녹으면 암석을 붙잡던 힘이 약해져 사면 붕괴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붕괴면에서 영구동토층이 녹았다는 현장 증거는 아직 없다. 장기간의 온난화가 사면을 약화시키는 배경이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거대한 붕괴를 직접 촉발한 마지막 방아쇠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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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석류는 어떻게 거대한 쓰나미가 됐나
네팔 대홍수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랑탕리룽 북면의 빙하. 잘라진 단면이 보인다. [AFP=연합뉴스]
거대한 토석류는 랑탕리룽 북쪽 사면에서 22㎞ 떨어진 지룽국경검문소까지 빠르게 도달했다. 중국 지질학자 궈자오청에 따르면 떨어져 나온 빙하·암석이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빙퇴석과 퇴적물을 추가로 끌어들였고, 이 과정에서 거대한 토석류로 변했다. 이동 속도는 초속 50m를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토석류는 반드시 폭우가 먼저 내려야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처럼 대규모 산사면 붕괴가 계곡의 물과 얼음, 퇴적물을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만들어질 수 있다. 물이 암석과 흙 사이에 들어가면 입자 사이의 마찰이 줄어들고, 흐름은 훨씬 유동적으로 변한다. 여기에 계곡 바닥의 퇴적물과 암석까지 쓸어 담으면서 흐름의 양과 규모가 커진다. 미국 텍사스대 샌안토니오의 수문학자 하팀 샤리프는 이를 “액체 콘크리트(liquid concrete)”라고 했다.
특히 좁고 급경사진 계곡은 붕괴 물질이 토석류로 변해 빠르게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30일 신화뉴스에 따르면 중국과학원 조사팀은 해발 5200m에서 떨어진 빙하와 암석이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면서 큰 에너지를 얻었고, 이동 과정에서 발생한 마찰열과 충돌로 얼음이 녹아 생긴 물이 주변의 빙퇴석과 퇴적물을 쓸어 담으면서 거대한 토석류로 변했다고 분석했다. 토석류는 지룽국경검문소에 도착해 약 0.7㎢를 휩쓸었고, 건물과 부대시설 27곳을 파괴했다.
천팡 중국과학원 연구원은 고해상도 위성 원격탐사와 드론을 활용해 지룽 검문소 일대의 빙하·빙호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