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세르트헤보우에서 공연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왼쪽),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사진 서울시향
“저의 고국 오케스트라와 여러분의 지휘자가 함께했기 때문에 오늘 공연은 더 특별합니다.”
30일(현지시간) 저녁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공연장인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마치고 청중을 향해 말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김봄소리는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의 유럽 투어에 함께한 협연자였다. 서울시향의 암스테르담 공연은 김봄소리의 말처럼 특별한 장면을 연출했다. 네덜란드 지휘자인 츠베덴이 2024년 서울시향을 맡은 이후 처음으로 암스테르담에서 함께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로열 콘세르트헤보우는 츠베덴에게 친정 같은 곳이다. 공연에 앞서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츠베덴은 “17세에 내가 바이올리니스트로 데뷔했던 공연장”이라고 소개했다. “로열 콘세르트헤보우에서 콩쿠르에 참가해 우승했고, 그 특전으로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또 이 공연장에 상주하는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에서 19세부터 악장을 맡았으며 지휘자로 데뷔하기 전까지 16년 동안 바이올리니스트로 연주했다. 그는 “내게 출발선인 동시에 집인 이곳에서 서울시향과 함께하게 돼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향은 30일과 31일에 암스테르담 공연을 열었다. 사진 서울시향
로열 콘세르트헤보우는 1888년 설립돼 올해로 138년이 된 명문 공연장이다. 따뜻한 동시에 세밀한 음향을 갖춰 오케스트라가 선망하는 연주 장소로 각광 받는다. 츠베덴이 “음향이 너무 좋아 연주를 더 잘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음악가들에게는 위험하다”고 경고할 정도다. 서울시향의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공연은 이번이 3번째. 2011년 정명훈, 2022년에는 오스모 벤스케와 함께 이 무대에 올랐다.
이날 무대에서 츠베덴은 강렬한 해석으로 귀환을 선언했다. 서울시향이 위촉해 지난해 초연했던 정재일의 ‘인페르노’에서는 타악기와 현악기가 거칠게 부딪혔고,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은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와 뚜렷한 대조로 ‘근육질’ 모차르트가 빚어졌다. 김봄소리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억양이 분명했으며 마지막 곡인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에서는 츠베덴의 주특기인 극적인 폭발이 돋보였다. 2000석을 꽉 채운 청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김봄소리는 “특히 유럽 청중 앞에서 한국 오케스트라와 함께할 때 더 울컥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서울시향은 암스테르담에 앞서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이탈리아 메라노에서 모두 3번의 무대를 가졌다. 츠베덴은 “공연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음악적 사파리 여행과 같았다”고 비유했다. 오케스트라가 회를 거듭하며 성장했다는 뜻이다. 그는 또 “이 과정을 거쳐 이제는 완전히 준비됐으며 베를린 필하모닉의 깊고 어두운 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단언했다.
유럽 투어는 연주곡목부터 야심 찼다. 각 한 곡의 협주곡과 교향곡으로 이뤄지는 평이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한국 작곡가의 신작, 고전 교향곡, 인기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 표제가 붙은 교향시로 된 구성이다. 츠베덴은 “2년 동안 서울시향과 함께하면서 색채가 다양해졌다고 믿는다”며 “다양한 시대와 작곡가를 해석할 수 있는 카멜레온 같은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다”고 했다.
30일 암스테르담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지휘자 얍 판 츠베덴. 사진 서울시향
츠베덴은 세계 음악계에서 ‘오케스트라 조련사’로 통한다. 미국 댈러스 심포니를 2008년부터 10년 동안 맡으며 오케스트라의 위상을 높였고, 홍콩 필하모닉을 2012년부터 12년 동안 이끌며 2019년 영국 그라모폰 ‘올해의 오케스트라’ 명단에 아시아 악단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따라서 2년 전 서울시향을 맡았을 때도 츠베덴의 오케스트라 경력 설계가 주목을 받았다.
츠베덴과 서울시향이 최근 공을 들이는 주제가 해외 공연이다. 지난해에는 뉴욕 카네기홀과 오클라호마에서 공연했으며 올해 유럽 투어는 각 도시 음악 축제의 초청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오케스트라의 해외 투어는 새로운 공연장과 청중에 적응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실력을 키워나가는 전략. 정재왈 서울시향 대표는 “내년에는 빈·로마·프라하에서 공연한다. 세계 청중의 주목을 받는 오케스트라로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유럽 청중에 대한 각인 효과도 있다. 서울시향의 유럽 투어에 함께하는 독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는 30일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실력 있는 성악가가 정말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노래한다면 어떻게 알려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이번 투어에서 서울시향과 베토벤을 연주하는 소프라노 최지은은 매우 훌륭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 유럽의 청중이 그를 기억하고, 앞으로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향의 유럽 투어는 31일까지 계속된다.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을 프라하 필하모닉 합창단, 마티아스 괴르네, 메조 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손지훈, 소프라노 최지은이 함께 들려준다. 이에 앞서 미국 작곡가 존 애덤스의 1999년 작품인 ‘상처 치료사’를 연주하는 구성. 역시나 도전적이고 이례적인 프로그램이다. 츠베덴은 “세계에 대한 비관과 낙관을 보여주는 흑과 백 같은 연주 곡목”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베토벤 ‘합창’에 대해서는 “서울시향과 여러 번 연주했기 때문에 우리만의 해석이 생겼고, 우리의 DNA가 됐다고 보는 음악이다”라고 했다. 서울시향과 츠베덴은 유럽 투어 이후 한국에서 10~12월 모차르트·말러·베토벤 연주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