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오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정상회담을 갖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1일 오후(현지시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중국 관영 신화사와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은 모든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중국이 필요로 할 경우 양국 간 상호 비자 면제 협정을 영구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양국은 지난해 상대국 국민에게 최대 30일간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고, 지난 5월 푸틴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당시 이 조치를 2027년 말까지 연장했다.
이에 시 주석은 “백 년만의 변화 속에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증가하고 있지만, 평화·발전·협력·호혜를 향한 열망은 변함없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두 정상의 만남은 시 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베이징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5월 20일 푸틴 대통령이 중국을 찾은 이후 3개월 만이다. 창설 25년을 맞은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31일~9월 1일)를 계기로 다시 만난 두 정상 간 회담의 최대 관심사는 가스관 ‘시베리아의 힘-2’ 협상이다.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보좌관은 지난달 28일 “가스관 문제는 동방경제포럼 및 31일 회담 양쪽에서 모두 논의될 것”이라며 타결 여부는 말을 아꼈다. 동방경제포럼은 9월 1~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연례 포럼이다.
시베리아의 힘-2는 2006년 처음 제안된 가스관으로 러시아 서시베리아 북부의 야말반도의 천연가스를 몽골을 거쳐 중국 북부로 공급하는 전체 길이 약 2600㎞의 초대형 프로젝트다. 러시아는 이미 1차 사업을 통해 연간 380억㎥의 가스를 중국에 공급하고 있으며 2차가 타결된다면 최대 500억㎥ 규모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수출하게 된다.
하지만 지난 5월 베이징 회담에서 양국은 공급 단가 등에서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알렉산더 노박 에너지 담당 러시아 부총리는 일부 계약이 “최종 합의에 근접했다”고 밝혔지만, 베이징은 침묵을 지켰다. 동방경제포럼에 에너지·투자를 총괄하는 딩쉐샹 상무부총리가 참석해 푸틴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어서 비슈케크에서 두 정상이 공감대를 확인한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세부 조율을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오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가스관 협상의 배경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자리한다. 2023년부터 SCO 회원국인 이란이 미국과 충돌 속에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제한했고, 미국은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과 기관까지 겨냥한 2차 제재 확대를 발표한 상태다. 중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해상 원유 수입량의 절반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어 러시아산 가스는 에너지 안보 리스크 분산 전략과 직결된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5년째를 맞으며 경제적 수세에 몰린 러시아 역시 유럽으로 향하던 기존 천연가스 수출 물량을 중국으로 돌리고 싶어한다.
김지윤 기자
‘이르티시강 북극 회랑’도 주목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서부 신장에서 발원해 카자흐스탄을 거쳐 러시아 오브강으로 이어지는 이르티시강(길이 4248㎞)을 활용해 북극해로 나아가는 하천·해상 복합 루트 구상이 구체화되고 있다고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이르티시 북극 회랑은 현재 중국의 북극항로가 지나는 85㎞ 베링해협이 유사시 미국에 의해 봉쇄될 경우 대체 통로로 기능할 수 있다. 다만 중국 정부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상태다. 또 겨울철 최장 6개월에 이르는 결빙과 계절적 저수위, 퇴적으로 인한 대규모 준설 부담 등 기술적 어려움도 상당하다.
미·중·러, 북·중·러 두 개의 3각 구도도 회담의 관전 포인트다. 앞서 23일(현지시간) 존 랫클리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탄 수송기가 비밀리에 약 7시간가량 모스크바에 머물며 우크라이나 종전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트럼프와 푸틴 대통령 모두 참석할 전망이어서 9월 말 워싱턴 미·중 회담에 이어 미·중·러 3자 회담이 성사될지 여부도 주목된다.
이와 관련 푸틴 대통령은 “지난 8월 중국 컨테이너선이 북극항로를 따라 첫 정기 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APEC 의장국 중국의 활동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극 항로에 대한 중국의 관심에 호응하면서, 11월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러시아의 북한 접근을 견제할 가능성도 크다. 최근 이번 동방경제포럼 계기 북·러 두만강 자동차용 교량 개통과 정상 접촉설이 제기됐다. 두만강 자동차 교량은 지난 4월 양국 장관이 연결식에 참석하면서 6월 개통이 예상됐으나 시 주석의 7년 만의 방북과 겹치며 열리지 않았다. 중국은 두만강 하류를 통한 해양 진출 현안이 있어 북한을 두고서도 중·러는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