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교동 ‘윤형근의 집’ 층 작업실 입구. 왼쪽 작품 ‘청색’은 BTS RM의 정규 1집 재킷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사실 그림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문제지.”
한국 단색화의 거목 윤형근(1928~ 2007)의 말이다. 면포에 큰 붓으로 청색과 다색(茶色) 기둥만 남긴 그의 그림이 어떤 자세에서 나왔는지 보여주는 공간, ‘윤형근의 집’이 1일 문을 연다.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40년을 살며 그림 그린 서울 서교동 붉은 벽돌집을 외아들 윤성렬씨가 되살렸다. 유족들은 관 지원 없이 화가가 살고 작업한 집 자체로, ‘윤형근 스타일’을 오롯이 보여준다.
1963년 장인 김환기(1913∼74)가 국민주택으로 분양받은 이곳에 윤형근은 1967년부터 살았다. 1983년 기존 주택을 헐고 동생인 윤도근 당시 홍익대 건축과 교수에게 설계를 맡겨 지금의 집을 지었다. 윤형근은 “삶과 예술은 따로 있지 않고 한 공간에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1층에 작업실, 2층에 생활 공간을 뒀다.
1984년 작업실의 윤형근. [사진 PKM갤러리]
윤형근이 모은 석물로 가득한 마당을 지나면 현관엔 백자를 좋아하던 김환기가 해방 전 인사동에서 잠시 운영했던 골동상 ‘종로화랑’ 현판이 걸려 있다. 작업실 문 앞엔 청다색 소품을 걸었다. 미술애호가이기도 한 방탄소년단 RM이 첫 솔로앨범 ‘Indigo’(2022) 재킷에 썼던 작품이다. 작업실 통창으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바닥엔 검은 물감 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소목장에게 의뢰해 제작한 단정한 목가구에는 즐겨 쓰던 물감튜브가 가지런히 놓였다. 2층은 생활공간으로 거실과 부엌, 안방에 사방탁자와 백자, 오디오부터 추사 김정희의 현판, 최종태의 조각, 1991년 서울서 만나 교우했던 미국 미니멀리즘 조각가 도널드 저드의 작품까지 윤형근의 취향과 인연을 그대로 보여준다.
차분한 집과 달리 윤형근의 삶엔 부침이 많았다. 1947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운동으로 투옥·제적됐다. 한국전쟁 때는 보도연맹 사건을 겪으며 생사의 기로에 섰다. 1960년 김환기의 장녀 김영숙과 결혼, 1966년 첫 개인전을 열고 196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하는 등 작가로 순탄한 길을 걷는 듯했다. 그러나 숙명여고 미술 교사이던 1973년 중앙정보부장이 얽힌 부정입학 비리를 따지고 들었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끌려갔다. ‘레닌 모자’라 불리던 뉴스보이 캡을 썼다는 이유였다. 이듬해 장인이자 스승인 김환기가 뉴욕에서 세상을 떴다. 윤형근은 이후 파리로 건너가 깊은 사유와 절제된 색채로 시대의 상흔과 내면의 시간을 담은 작품을 남겼다. 귀국 후 경원대 교수로 재직하며 미술대 학장과 총장을 지냈고,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전에도 참여했다. 2007년 작고, 2018년 단색화 화가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윤형근의 집’ 개관을 맞아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는 10월 3일까지 ‘윤형근을 다시 상상하다’ 전시를 연다. 뉴욕 저드 파운데이션에서도 10월 8일부터 내년 1월 9일까지 윤형근 개인전을 연다. 과거 도널드 저드의 초대로 열린 윤형근 개인전 출품작 가운데 6점을 다시 한자리에 모았다. ‘윤형근의 집’은 9월 1일부터 10월 17일까지 예약제로 운영한다. 한 회당 8명씩, 전 회차 도슨트 투어다. 성인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