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업계의 ‘노사 기상도’가 업종별로 갈리고 있다. 자동차업계 임금협상(임협)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가운데, 철강·조선업계는 파업 전운이 짙어지고 있어서다.
현대차노조는 지난 31일 임협 잠정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에서 잠정 합의안이 가결되면 올해 임협이 타결된다. 현대차노조는 10년 만에 전면 파업에 나서는 등 상당한 진통을 겪은 끝에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앞서 지난달 28일 조합원 투표를 가결시킨 기아노조는 이날 광명 오토랜드에서 사측과 임협 조인식을 열었다. 르노코리아도 지난달 임협 잠정 합의안을 통과시켰고, 한국GM과 KG모빌리티는 지난 7월 임협을 마무리했다.
임협이 마무리 되더라도 파업으로 누적된 손실과 업계 전반의 수익성 악화는 자동차업계의 숙제로 남았다. 업계는 현대차노조 파업 기간 중 현대차가 5만5200대의 생산 차질을 빚어 누적 매출 2조30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한다. 현대차는 상반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8% 감소해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자동차업계에 이어 철강·조선업계에서도 노사 긴장이 계속될 전망이다. 포스코노조는 1968년 창사 이래 첫 파업을 예고하며 임협 타결 시한을 이달 9일까지로 제시했다. 이미 지난달 18일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중지 결정을 내려 쟁의(파업)권을 확보한 상황이다.
포스코노조는 ▶월 기본급 7.1% 인상 ▶기본급의 600%에 해당하는 격려금 ▶우리사주 50주 ▶기본급의 200%에 해당하는 명절상여금 등을 요구했다. 포스코노조는 “누적된 인력 부족과 장시간 노동, 안전·복지 문제를 바로잡고 현장의 희생에 대한 정당한 인정과 보상을 요구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측은 철강 업황 부진과 대미 고율 관세 등 경영 여건 악화로 난색을 보인다. 포스코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43.3% 줄어 4870억원을 기록했다.
HD현대중공업노조는 이달 2일 노조 간부·대의원 중심의 7시간 부분 파업을 시작해 15일까지 조직별 부분 파업을 진행한다. HD현대중공업노조는 ▶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호봉승급분 별도) ▶상여금 100% 인상 ▶영업이익 최소 30% 성과 공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이 아직 올해 임금 인상안을 제시하지 않은 가운데, 노조 측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압박 차원에서 파업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HD현대중공업 측은 노조 요구를 검토하며, 협상을 준비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영업이익의 30% 성과 공유 등에 대해 노사 입장차가 커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업은 자동차 생산과 달리 일부 인원이 파업해도 공정이 진행될 수 있지만, 파업 규모가 커질 경우엔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반도체업계의 고액 성과급 지급이 산업계 전반의 성과보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업종·회사 간 실적 격차가 있고 경영 상황이 달라 일률적으로 보상 기준을 높이는 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글로벌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큰 만큼 단기 성과 배분보다는 미래 투자와 위기 대응 여력을 함께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동차업계 노사가 업황 악화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임협을 마무리한 만큼, 철강·조선업계도 불확실성 등을 함께 고려해 해법을 찾아야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