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에서 대통령과 여당 즉 집권당의 관계는 오묘하다. 한편으로 여당은 대통령을 배출하고 국정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핵심 구성원인 소속 국회의원들은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행정부와 그 수장인 대통령을 견제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여당으로선 두 역할 간 근본적 충돌의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제 여당의 탄생
원조 대통령제 국가 미국이 의회정치를 처음 시작하던 시점에는 정당 개념이 미약했다. 오히려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도당으로 보고 터부시했다. 의원들은 다분히 개별적이었고, 기껏해야 유동적인 파벌들이 종종 형성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초기의 대통령들은 여야 정당과의 상호작용 및 그 동학에 대해 현실정치적으로 정확히 알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나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 옐친(Boris Yeltsin)은 반정당주의를 표방하는 가운데 자신을 개별 의원들보다 훨씬 상위에 있는 존재로 여겼고, 따라서 자신이 의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혹은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통령제 초기의 문법은 오래갈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사안마다 의원들의 상당수는 합종연횡하며 대통령의 입장에 반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들로선 이념적으로든 정책적으로든 의회 안에서 자신을 지지해줄 안정적 집단이 필요했다. 동시에 일부 의원들은, 매 순간은 아닐지라도, 대체로 대통령 편에 서는 것이 재선, 지역구 발전, 입각 기회 등에 있어 이득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대통령제에서 여당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정청래 당 대표 후보가 9일 대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구·경북 순회경선 합동연설회에 참석해 있다. 송봉근 객원기자
미국 대통령제 황금기의 여당
하지만 여당이 꼭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지했던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20세기 초부터 1980년대까지도 미국의 여당은 대통령으로부터 꽤 독립적이었다. 정당규율 또한 그리 강하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의 이념과 정책의 큰 방향에는 동의했지만, 사안에 따라 소위 ‘교차투표’를 통해 반대를 표명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개별 의원들로선 이념적 소신이나 지역구 또는 지지층의 이해 때문에 이런 행태를 취했겠으나, 대통령제의 삼권분립 맥락에서 보자면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마땅한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는 대통령제 운영의 모범으로 여겨졌고, 전후 많은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이 이 정부형태를 수입하도록 만든 경험적 근거 중 하나였다. 이 미국 대통령제의 황금기에 대통령들은 여당은 물론 야당 소속 의원들과도 끊임없이 대화하고 협상하며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조율해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학의 시조격인 뉴스타트(Richard Neustadt)의 발견처럼 설득의 리더십이야말로 대통령의 핵심 덕목이자 자원이었다.
집권 여당은 대통령의 파트너이자 입법부 일원
과거 미국에선 여당도 교차투표로 대통령 견제 정치적 양극화로 대통령·여당과 야권 대립 구도 친명계 헤게모니 투쟁 돌입하면 대통령도 피해
대통령의 여당 통제와 정치적 양극화
그러나 미국 대통령제 운영의 이 모범적 모델은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재현되지 못했다. 이승만과 옐친이 그랬듯 대통령들은 주도적으로 여당을 만들고 수직적으로 이를 통제함으로써 복잡한 의회정치에 대응하려 했다. 어느 쪽이 먼저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야당 또한 응집해 대통령을 향한 반대의 입장과 태도를 강화해갔다. 심지어 미국까지 포함해 많은 대통령제 국가들에서는 대통령과 여당을 한 축으로, 그리고 야권을 또 다른 한 축으로 하는 극렬한 대립 구도가, 특히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와 함께 고착되었다.
최근 한국에선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 선거가 친대통령계 즉 친명계 김민석 전 총리의 승리로 끝났다. 친청계 정청래 전 대표가 선전했지만, 정치적 양극화 속 여대야소의 상황에서 당원과 지지층의 다수는 대통령을 견제하는 입법부 일원으로서의 여당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힘을 싣는 국정운영 파트너로서의 여당을 더 원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표심의 선호는 존중되어야 하며, 한동안 정국은 그 바람대로 흘러갈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 예산 언박싱 2027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가야 할 길
하지만 그렇다고 여당이 국회 내 다수파이자 가장 책임이 큰 주체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방기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미국 대통령제 작동의 황금기가 당장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기를 바라는 건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친명계가 여당 내 다른 계파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존중하고 타협을 통해 공존하려 노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다.
특히 친명계가 차기 총선, 나아가 대선을 바라보며 헤게모니 투쟁에 돌입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이 대통령에게도 득 될 것이 없다. 당권파가 분열을 감수하고 자파 일색으로 당을 색칠하는 건 야당일 때는 나름 유용할 전략일 수 있으나, 여당일 때는 대통령 지지율과 연동되면서 실패의 위험성을 키울 수 있다.
마침 야당 국민의힘 또한 극심한 당내 분열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만큼, 지금은 여당이 선제적으로 당내 다양성을 실험할 수 있는 호기이다. 따라서 주류와 비주류가 함께 합의제적으로 당을 운영해나가야 한다. 특히, 이번 당 지도부에는 친청계 최고위원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공존을 향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물론 친청계도 합의에 응하고 협조할 일은 협조해야 하며, 무조건적 반대나 당대표 흔들기로 일관해선 안 된다. 대규모 당원의 분열 및 강경파와 온건파의 분화 조짐을 고려하면 당내 숙의도 절실하다. 무엇보다, 이에 실패한다면 여권은 위기에 빠질 것이며 분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당제가 요원하다면, 미국 대통령제의 황금기 때 성행했던 정당 내 다양성이라도 보장하는 것이 대통령제의 바람직한 여당이 가야 할 길이다. 나아가, 이는 여야 내부의 획일성을 향한 집착으로부터 비롯된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를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당장의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