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라에 부임할 때마다 본국 기업이 수출한 제품이 주재국 현지에서 환영받는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면 마음이 뿌듯하고 반갑다. 서울이 바로 그런 곳이다. 한국 시장에서는 노르웨이산 연어와 브라운 치즈를, 스위스산 시계와 밀크초콜릿 그리고 심지어 치약까지 친근하게 만날 수 있다. 동시에 한국산 자동차·화장품·전자제품은 노르웨이와 스위스에서 익숙한 제품이 됐다.
연어·치즈·초콜릿 등 무관세 혜택
보호주의·디지털화 변화에 맞춰
협정 현대화로 더 큰 기회 열기를
한국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노르웨이·리히텐슈타인·스위스·아이슬란드) 4개 회원국의 교역은 이처럼 양측 국민의 일상에 깊게 자리 잡았다. 의약품은 건강 향상에 도움을 줬고, 조선업과 첨단 제조업 협력은 기업 성장과 새로운 혁신 기회를 만들어 왔다.
이러한 성과는 우연이 아니다. 1년 남짓 협상 끝에 양측의 자유무역협정(FTA)은 2006년 9월 1일 발효됐고,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한국이 유럽 국가들과 체결한 첫 FTA이자 지역 경제블록과 맺은 첫 협정이었다. 당시 협정은 상품 및 서비스 교역, 정부조달, 경쟁, 지식재산권(IP) 등 경제 협력의 주요 분야를 포괄했다. 상품 교역의 99% 이상에 관세를 철폐하고, 개방적이고 기업친화적 원산지 규정을 마련했다.
당시 협정이 보여준 전략적 비전에 따른 성과는 분명하다. FTA 체결 이후 양측의 교역은 약 3배 증가해 2025년에는 85억 유로(약 13조7000억원)를 넘어섰다. 오늘날 한국은 상품 교역 기준으로 EFTA 4국의 5위 수출 상대국이자 7위 수입 상대국이다.
이 협정 덕분에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와중에도 기업과 노동자·소비자 모두에게 안정성과 법적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 왔다. 이는 양측 경제가 높은 상호보완성을 갖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과 EFTA 4국은 세계경제에서 서로 다른 강점을 갖고 있다. 의약품, 첨단 제조업, 고부가가치 소비재처럼 양측 모두 국제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서도 기업들은 서로 경쟁하기보다 각자의 강점을 바탕으로 상호보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세계는 크게 달라졌다. 당시에는 무역 자유화가 앞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오늘날의 국제 환경은 훨씬 더 복잡하고 도전적이다. 보호무역주의의 확산과 지정학적 긴장, 경제적 분절화는 글로벌 무역 질서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동시에 기술 발전은 기업이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와 데이터의 이동, 인공지능(AI), 녹색기술은 이제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가 됐다. 그런데 20년 전에 양측 협정은 스마트폰과 클라우드컴퓨팅, AI가 기업 활동의 일상적인 일부가 되기 전에 체결됐다. 따라서 시대 변화에 맞게 협정을 현대화할 이유는 분명하다. 2006년 당시에는 양측 FTA가 매우 앞선 수준의 협정이었지만, 2026년의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협정 현대화의 핵심은 추가적인 관세 인하에 있지 않다. 기업들이 협정을 더 쉽게 활용하도록 통관 절차 간소화, 원산지 규정 관련 요건 효율화, 불필요한 행정 부담 감축이 핵심이다. 이러한 개선은 협정의 활용도를 높이고, 더 많은 기업이 혜택을 누릴 것이다.
이는 지난 20년간 변화해 온 한국의 통상정책에도 부합한다. 한국은 2006년 이후 수많은 FTA를 체결했으며, 디지털 분야를 비롯한 새로운 통상 규범을 선도해왔다. 기존 협정 현대화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유지하는 동시에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들 사이에 새로운 협력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정 현대화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이다. 개방적이고 규범에 기반한 무역 질서가 점점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한국과 EFTA 4국은 번영과 혁신, 회복력을 뒷받침하는 국제경제 체제에 대한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할 수 있다.
FTA 체결 20주년을 맞은 올해 양측은 지난 성과와 성공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앞을 내다봐야 한다. 기존 협정을 현대화함으로써 파트너십이 역동성과 미래 지향성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도 함께 성장하고 변화에 적응하며 번영할 기반을 만들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