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현지시간) 네팔 바랏푸르 치트완 임시 안치소에서 만난 사기아르(33)는 눈시울을 붉혔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로 5시간 정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이곳은 대홍수가 시작된 북부 바그마티주 라수와에서 약 180㎞ 떨어진 곳이다. 라수와의 트리슐리강이 이 지역 나라야니강으로 이어져 있어 참사를 당한 이들의 시신이 대규모로 발견됐다. 하지만 시신들을 보관하거나 처리할 공간이 없어 네팔 당국은 바랏푸르 엑스포센터에 임시 안치 공간을 마련했다. 현장에서는 혹시 모를 전염병 감염 등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지급했고, 센터 앞에는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사기아르의 아들(13)은 집안 살림을 돕겠다며 삼촌을 따라 라수와로 갔다가 실종됐다고 한다. 사기아르는 5일 동안 치트완에서 아들을 찾아다니다 전날 아들로 보이는 시신이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고 유전자(DNA)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번 홍수로 아들을 포함해 가족 5명을 잃었다”고 울먹였다. 또 다른 실종자 가족 아닐(30)은 “트레킹을 갔다가 실종된 둘째 형님과 조카를 찾으러 왔다. 카트만두에 있는 병원은 전부 다 확인하고 왔다”고 했다.
시신들은 이곳으로 옮겨지기 전에 바랏푸르 병원에서 소독 등 처리 작업을 거친다. 병원 주변 천막 아래 임시 공간에서는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이 쌓여 있는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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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수색 좀”…한국인 가족, 실종 직전 좌표 건네며 호소
힌두교와 불교 신자가 많은 네팔에서는 시신을 매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더운 날씨와 우기가 겹치면서 시신 부패와 전염병 확산을 우려한 네팔 당국은 결국 최소한의 DNA만 채취한 뒤 신원이 확인되지 않거나 유족이 찾아가지 않은 시신을 대상으로 집단 매장에 나섰다. 치트완에서는 데브갓 숲에 시신을 집단 매장하고 있다. 바랏푸르 병원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데브갓 숲에 다다르니 무장한 경찰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사람들이 거대한 구덩이를 판 뒤 쉼 없이 시신을 매장하고 있었다. 작업이 끝난 토사 위에는 번호가 적힌 팻말을 세워 위치를 표시했다. 현지 경찰은 “오늘까지 203구 정도의 시신을 묻었고, 50~60구 더 묻어야 한다”며 힘들어했다.
전날 오후 카트만두에서 만난 한국인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가 수색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한국남동발전 실종자 가족 9명은 “신속대응팀이 네팔에 온 이후 아무것도 못 하고 지난 4일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했다. 어퍼트리슐리(UT)-1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 근무하던 한국남동발전 소속 한국인 직원 3명은 홍수 발생 당시 실종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대응팀과 도착 첫날 만나 실종자가 있을 만한 지역의 좌표와 관련 자료를 모두 건넸다”며 “헬기를 통한 육안 수색으로는 실종자를 찾기 어려우니 반드시 구조 인원이 투입돼야 한다는 의견도 건넸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외교력을 총동원해 네팔 당국에 수색을 요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실종자는 두산에너빌리티 6명, 한국남동발전 3명 등 총 9명이다.
정부는 사고 엿새째인 31일 처음으로 육상 수색을 시작했다. 외교부는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의 육상 수색조는 소방청 소속 9명으로 구성됐으며, 현지시간 기준 오전에 카트만두에서 출발했다”며 “수색조는 사고 현장에서 1~2㎞ 떨어진 람체 지역까지 차량 이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와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이 각각 확보한 헬기 1대씩도 이날 위어댐 일대를 집중 수색했다. 위어댐은 하류 메인오피스(사무동)에서 직선거리 약 10㎞ 떨어진 곳으로, 연락이 끊긴 두산에너빌리티 직원 1명이 사고 당시 인근 사무실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헬기를 통한 광역 수색과 드론을 통한 정밀 수색, 육상 루트 확대를 병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시시르 커날 네팔 외교장관과 통화해 “연락 두절 추정 지점을 중심으로 집중 수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며 네팔군의 지원과 현지 신속대응팀과의 긴밀한 협조를 당부했다. 한편 이날 네팔 홍수로 고립됐다 구조된 두산에너빌리티 근로자 9명은 무사히 귀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