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6시 11분께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퇴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대법관 재제청 요구에 대한 입장'에 대한 질문에 "우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자세한 내용은 검토 중"이라고 답변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대법관 후보로 점찍은 김민기 고법판사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청와대는 ‘여성 대법관을 늘려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대법원이 제안한 여성 후보인 박순영 고법판사는 청와대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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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후보 추천해 온 전례 깨고 김민기 후보 지목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예산 언박싱 2027'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당초 청와대는 김민기·박순영 후보를, 대법원은 윤성식·손봉기 후보를 각각 대법관 후보 1·2순위로 추천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고심 끝에 청와대가 2순위로 제시한 박순영 고법판사를 제청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갖고 있는 대법관 후보를 놓고 청와대와 대법원이 물밑 협상을 통해 접점을 찾아가는 방식은 통상적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돌연 “박순영 고법판사 말고, 김민기 고법판사를 제청해 달라”며 입장을 바꿨다고 한다. 김민기·박순영 복수 카드를 갑자기 김민기 단수 카드로 별다른 설명 없이 바꾼 것이다.
관례상 단 한 명의 후보를 특정해 청와대가 “제청해 달라”거나 대법원이 “제청하겠다”고 통보한 전례는 없었다고 한다. 2023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실과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법원이 대법관 후보를 놓고 갈등했을 때도 대통령실 입장은 “특정 후보를 거부하겠다”는 것이었지, “특정 후보를 요구한다”는 건 아니었다.
청와대의 김민기 단수 카드 요구에 대법원은 ‘제청권 침해’라는 기류가 강해졌고, 청와대 역시 ‘임명권 존중’을 요구하면서 양측 협상은 평행선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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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여성 법관인데…김민기 선호 왜?
지난해 7월 촬영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청와대 본관. 뉴스1
대법원은 표면적으로는 김 고법판사의 남편이 오영준 헌법재판관이라는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재판소원 도입 후 아내가 관여한 대법원 판결의 위헌성을 남편인 헌법재판관이 판단하게 되면서 이해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김 고법판사의 재판 역량에 대해 법관들 사이에서 회의적 의견이 있다”고 했다. 또 인물을 떠나 ‘특정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청와대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대법원이 경계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청와대가 김민기 고법판사를 고집하는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청와대와 여권이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내걸며 여성 법관인 김 고법판사의 제청을 압박하고 있지만, 박순영 고법판사 역시 여성 법관이기 때문이다.
두 후보 모두 노동법 전문가라는 점 역시 공통적이다. 박 고법판사는 대법관 근로조 재판연구관 출신으로, 법원 내 실무 지침서인 ‘노동재판실무편람 2022’를 감수하는 등 노동사건 실무에 정통한 법관으로 꼽힌다. 김 고법판사는 노동법 석·박사로, 중앙노동위 공익위원을 역임하며 부당해고 등 사건을 다뤘다. 두 사람 모두 대법원 노동법실무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이 때문에 “이재명 대통령에게 유리한 재판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 아니냐(조배숙 의원)”는 야권 주장이 법조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김민기 고법판사와 박순영 고법판사의 차이라고 한다면, 김민기 고법판사에게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맡아 심리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민기 고법판사는 댓글 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2심 주심을 맡아 ‘징역 2년’이라는 형량은 유지하면서도 공직선거법 위반은 1심과 달리 무죄 판단한 적이 있다. 수원고법이 지난해 4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뇌물공여 혐의 사건에서 실형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2심 무죄를 선고했을 때 김 고법판사 역시 이 재판부 소속이었다.
청와대는 ‘김민기 고법판사로 재제청하라’는 입장을 사실상 고수 중이다. 대법원은 2012년 김병화 대법관 후보가 낙마했을 때의 전례에 따라 원점에서 추천위를 재구성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때마다 추천위를 구성하도록 정한 법원조직법 조문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번 주 중으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