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패배 후 슬픈 표정의 메시. 그는 6주 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든 것을 바쳤고, 더 이상 낼 힘이 남아있지 않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GOAT) 리오넬 메시(39)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메시는 31일(현지시간) 자신의 SNS를 통해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깊은 고민 끝에 은퇴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영혼 깊이 여전히 가슴 아픈 결정이지만 이제 그 때가 왔음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모든 것을 이뤄낸 최근 몇 년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항상 모든 것을 바쳤다고 맹세한다. 기쁨을 안겨드리고 축구를 통해 아르헨티나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언제나 싸우며 이 유니폼을 위해 모든것을 쏟아부었다. 대표팀을 사랑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이제 더 이상 낼 힘이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제 뒤에는 자격이 있는 매우 재능있는 젊은 선수들이 올라오고있다”고 덧붙였다.
메시가 31일 자신의 SNS에 올린 메모와 게시글. 사진 메시 인스타그램
시간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흘러간다. 1985년생 39세 메시의 국가대표 은퇴 역시 예견된 수순이었다. 다만 BBC와 디애슬레틱 등 외신들은 최근 겪은 두 가지 사건이 그 결단을 조금 앞당겼을 뿐이라고 봤다.
하나는 불과 6주 전 열렸던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이었다. 8골4도움을 올리며 조국을 또 한번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스페인에 완패한 데다 경기 막판 난투극으로 마무리됐다. 패한 직후 메시의 눈물은 더는 지나한 여정을 반복할 수 없다는 신호이자, 그의 대표팀 커리어가 끝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또 하나는 지난달 초 전해진 부친 호르헤 메시의 별세였다. 오랜 세월 대리인이자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던 아버지의 부재는 거대한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메시는 부친상 직후 “아버지 없이 무엇을 해야할지, 어떻게 나가야할지 모르겠다. 축구를 더 오래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선수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몇 주를 보낸 메시는 월드컵 결승전 불과 이틀 뒤인 7월21일 작성했던 은퇴 성명 초안을 공개하면서 아버지 별세가 결단을 굳히는 결정적 계기였음을 전했다.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패배 후 감정이 격해진 메시. EPA=연합뉴스
메시가 성명에서 밝혔듯 그의 대표팀 여정은 아름다우면서도 험난했다. 그의 국가대표 경력은 축구경기 전·후반전처럼 극명하게 갈렸다.
메시는 2016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패배 후 국가대표 잠정 은퇴를 선언한 적이 있다. 2005년 A매치에 데뷔한 메시는 2014년, 2015년, 2016년 3연속 메이저대회 우승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소속팀 FC바르셀로나에서의 압도적인 기량을 대표팀에서는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1986년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 디에고 마라도나와 끊임없는 비교에 시달렸다.
그러나 대통령과 팬들의 간곡한 만류로 돌아온 메시는 202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그의 트로피 진열장을 채우지 못했던 월드컵 트로피는 축구 GOAT 논쟁의 유일한 걸림돌로 남아 있었다.
2016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패배 후 주저앉아 있는 메시. AFP=연합뉴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그의 커리어의 하이라이트였다.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터트린 2번째 골은 가장 아름다운 골은 아니었을지라도 그의 조국을 향한 사랑과 절박함, 처절한 헌신이 응축된 득점이었다. 그가 A매치 207경기에서 기록한 125골 중 단연 최고의 골로 꼽힌다.
마지막 퍼즐을 맞췄는데도 메시는 북중미 월드컵에 출전해 한달 동안 우리에게 또 한번 잊지 못한 순간을 선사했다. 이집트와의 16강전 대역전극은 문자 그대로 기적이었다. 그라운드를 조깅하듯 걸어다녔지만 특유의 폭발력은 여전했다. 그는 35세 이후 월드컵에서 15골이나 넣었다.
스페인과의 결승전은 그가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뛴 마지막 경기가 됐다. 공교롭게도 10년 전 메시가 은퇴를 선언했던 그 경기장이었다.
카타르월드컵에서 고대하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메시. EPA=연합뉴스
13세에 고향 로사리오를 떠나 바르셀로나로 향해 아르헨티나인보다 카탈루냐인에 가깝다고 불렸던 소년은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더로 마침표를 찍었다. 키 1m69㎝ 작은 거인 메시가 우리에게 선사한 이야기는 한편의 위대한 대서사시였다.
메시는 “동료들과 함께 꿈꾸기만 했던 순간들을 여러분께 안겨드렸다는 안도감과 자부심을 갖고 떠난다. 사랑한다. 저를 아르헨티나인으로 태어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면서 고별사를 마쳤다. 2028년말까지 미국 인터 마이애미와 계약이 남았지만 더 이상 경기를 즐기지 못하거나 동료들을 돕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그 전에 멈출 수도 있다.
한 팬은 메시를 향해 이런 헌사를 남겼다. “가장 시적인 커리어가 끝을 맺었습니다. 하느님이 직접 쓰신 진짜 동화 같았고, 때로는 한편의 영화 같았습니다. 결승전 패배 후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돌아와 모든 것을 우승했던 그 시절들. 당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 날이 그 어느때보다 가까워졌음을 직감했습니다. 부디 축구 자체를 완전히 그만두지만 말아주세요. 그것만큼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