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지난달 30일 중폭 개각을 통해 재정경제부·국토교통부 등 핵심 경제 부처 장관 교체를 공식화한 지 이틀 만이다. 실장급 청와대 고위 참모가 교체된 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1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청와대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을 열고 “김 실장은 어제(지난달 31일) 사의를 표명했다”며 “이 대통령은 오늘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최근까지도 김 실장 교체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뜻을 밝혀왔으나,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앞두고 김 실장의 사의 제출과 이 대통령의 사표 수리를 공개했다. 김 실장은 전날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비경제 부처 부별 결산 심사에도 ‘예산 관련 긴급 회의’를 이유로 불참했다.
김 실장은 이재명 정부 출범 사흘 만인 지난해 6월 6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부임했다. 임기 초반 현안이던 한·미 관세 협상을 주도해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증시 정상화와 부동산 정책, 호남 반도체 등 3대 메가프로젝트 미래 산업 육성 정책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용범 정책실장이 지난 5월 호텔현대 바이 라한 울산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K-조선 미래비전 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지난 5월 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2개 종목을 대상으로 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도입되고 이후 코스피가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김 실장에 대한 사퇴·경질 요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앞서 김 실장이 지난 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금융위원회에 ‘나스닥에선 가능한 것을 왜 국내에서는 못 하게 하느냐’고 문제제기를 했고 (정책 부서에) 관련 검토를 지시했다”며 스스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기본 공제액 차등 적용 등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도 김 실장에 집중됐다.
당초 청와대는 여론의 비판에도 정책의 안정성 측면에서 김 실장 유임 쪽에 무게를 뒀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달 말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선 당연히 이런저런 논란이 생기는데, 야권이 비판한다고 해서 곧바로 경질하는 건 이 대통령 철학과 맞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실장 외에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도 거론됐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리얼미터]
문제는 대통령 지지율이었다. 지난달 25~27일 한국갤럽 전화면접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42%로 떨어졌고, 조원C&I·스트레이트뉴스(지난달 22~24일, 38.9%)와 리얼미터·에너지경제신문(지난달 24~28일, 38.9%) 무선전화 자동응답(ARS) 조사에선 이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30%대로 진입했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그간 고생한 것과는 별개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이번 사퇴 배경을 전했다.
김 실장의 메시지를 둘러싼 논란도 교체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김 실장은 3대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AI·반도체 산업에 대한 단상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길게 올렸는데, 이를 두고 국민의힘에선 “시장을 흔들고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다”(최은석 원내대변인)고 비판했다. 특히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는 성공의 비용”(5월 26일 페이스북)이나 “우리나라 변동성이 큰 건 개인투자자들이 굉장히 역동적으로 투자를 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7월 28일 상파울루 기자간담회) 같은 발언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김 실장 유임으로 지난달 30일 중폭 개각의 효과가 반감된 것도 김 실장의 사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개각 직후 장동혁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가 “국민이 쫓아내라는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그대로 뒀다”고 주장하며 외려 공세의 고삐를 조였기 때문이다. 개각 직전엔 더불어민주당 친명계 내부에서조차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준비되지 않은 형태에서 도입돼 주식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일정 부분 책임이 필요하다. 그냥 넘어가는 것 자체는 적절하지 않다”(김영진 의원)는 경질론이 나왔다.
이날 김 실장의 사퇴 소식에 국민의힘은 비판의 날을 더 세웠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민들과 야당의 경질 요구를 수용한 건 정말 늦었지만 다행”이라며 “단순히 보여주기식 인적 교체에 그쳐서는 안 되고 실질적인 정책 기조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져야 할 책임을 정책실장이 감당한 측면이 있다”며 “(김 실장의 사퇴)는 개각 실패를 자인한 꼴”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김 실장이 주도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대해 국정조사 실시 요구서를 제출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