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인타운 상권<상> 고객 감소 아닌 소비층 변화 재택·고물가에 점심 특수 실종 ‘인맥 영업’·‘모방 창업’ 한계 “달라진 소비층 잡아야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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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상권 새 판 짜야 살아남는다 [본지 전문가 좌담회]
타운 밖 네트워크도 과제
LA한인타운은 커지는데 한인 상권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고층 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서고 주거·유동인구는 증가했지만 한인 주민과 업소는 되레 감소세다. 개발붐이 한인 상권의 성장으로 이어지던 공식이 깨진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고객이다. 외곽으로 떠난 한인 주민의 자리를 젊은 타인종이 채웠지만 소비 방식은 다르다. 그들의 지갑은 기존 한인 식당과 생활업소보다 카페와 디저트, 유명 식당으로 향한다. 공간과 분위기, SNS에 공유할 경험에도 돈을 쓴다. 사람이 늘어도 한인 업소의 손님은 늘지 않는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짚었다.
경영환경도 악화했다. 재택·하이브리드 근무로 직장인 점심 수요가 줄고 임대료와 인건비, 식자재비는 뛰었다.
세대교체도 막혔다. 1세대 업주는 고령화했지만 2세는 고된 1세대의 업장을 기피하고 실질적인 경영권이 없는 승계도 외면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한인 상권의 쇠퇴로만 보지 않는다. 한인 인구와 비즈니스는 오렌지카운티 등으로 확산하고 있고 LA한인타운에는 젊은 타인종이 새로운 고객층으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새로운 고객을 누가 잡느냐다. 떠난 한인 고객을 기다리기보다 새 소비층이 원하는 메뉴와 공간, 체험형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한 번 몰렸다 사라지는 유행 대신 다시 찾는 고객과 장수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
결국 한인 상권의 과제는 ‘지키는 것’과 ‘넓히는 것’이다. LA한인타운에서는 새 소비층을 끌어들이고, 밖으로 뻗어가는 한인 비즈니스와 차세대는 새로운 경제 네트워크로 연결해야 한다.
건물과 사람이 늘면 한인 상권도 함께 성장하던 시대는 끝났다. 달라진 고객과 세대에 맞춰 변하지 않으면 개발의 과실은 다른 업소의 몫이 될 수 있다.
LA한인타운 상권의 현주소와 미래를 진단하는 본지 전문가 좌담회가 열렸다.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조앤 이 가부키그룹 대표, 션 모 앤드모어 공동대표, 알버트 장 김앤리 회계법인 대표, 데이비드 김 PCB뱅크 최고뱅킹책임자, 캐시 이 드림부동산 에이전트, 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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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늘어도 한인업소 고전…“체험형 상권이 살길”
LA한인타운의 상권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주민과 한인 상권이 밀집해 자금과 일자리가 내부에서 순환했지만 지난 10여 년간 대규모 주택 개발과 인구 변화로 한인 중심의 상권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외형은 커졌지만 한인사회의 경제적 기반과 정체성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본지는 한인 상권 변화의 원인과 지속 가능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에는 건축설계 업체 앤드모어의 션 모 공동대표, 알버트 장 김앤리 회계법인 대표, 조앤 이 가부키그룹 대표, 데이비드 김 PCB뱅크 최고뱅킹책임자(CBO), 캐시 이 드림부동산 에이전트가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한인타운이 쇠퇴한 것이 아니라 한인 중심의 생활형 상권에서 젊은 다인종 소비층이 이끄는 체험형 상권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한인 업소들이 밀려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거시설과 유동인구는 늘었는데 한인 상권은 왜 어려운가.
▶션 모= 아파트 증가가 기존 한인 업소의 고객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젊은 타인종 주민은 과거 한인 주민과 소비방식이 다르다. 소비도 기존 한인 업소보다 카페와 트렌디한 식음료점에 집중한다.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존 업소가 새 소비층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캐시 이= 한인 주민이 외곽으로 빠지고 젊은 타인종이 유입됐다. 주거 인구와 한인 상권 고객층이 분리된 것이다.
▶알버트 장= 과거에는 한인타운에서만 살 수 있던 물건도 지금은 온라인으로 쉽게 구한다. 소비자가 한인타운을 찾을 이유가 줄면서 한인 대상 소매업도 한계에 직면했다.
소비층과 소비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나.
▶션 모= 윌셔 불러바드 인근 일본식 마켓에서는 10달러 안팎의 장어 메뉴를 사기 위해 젊은 손님들이 줄을 선다. 6가의 대만계 카페도 늦은 밤에 고객이 몰린다. 이들은 맛뿐 아니라 공간과 분위기, 경험을 소비한다. 한인타운의 매력이 줄어든 게 아니라 이를 소비하는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캐시 이= 젊은층에게 한인타운은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하는 ‘경험 소비’ 공간이다. 식사와 생필품 수요는 줄고 커피와 디저트, 유명 식당과 시그니처 메뉴로 소비가 이동했다.
▶조앤 이= ‘우리 음식이 좋은데 왜 안 오느냐’고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고객이 원하는 반찬 구성과 메뉴, 식사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오피스 상권과 기존 영업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나.
▶션 모= 예전에는 오전 9시면 주차장 6층까지 찼지만 지금은 절반가량 비어 있다. 하이브리드 근무가 확산한 데다 점심 한 끼에 25달러가 들면서 직장인들이 간편식이나 배달을 이용한다. 직장인 점심 수요가 주변 상권을 지탱하던 구조가 무너졌다.
▶알버트 장= 과거 한인끼리 연결되던 소개 영업이 타인종으로 확대되면서 인맥과 지역 중심의 영업방식도 바뀌고 있다.
▶조앤 이= 한인타운에서는 새 가게에 고객들이 몰렸다 떠나는 소비가 반복된다. 반면 가부키의 타인종 고객은 1년 내내 찾아오는 단골이 많다.
▶캐시 이= 한 업소가 성공하면 유사 업종과 프랜차이즈가 우후죽순 생겼다가 과열되면 함께 문을 닫는다. 한인타운은 과잉 복제로 장수 브랜드를 만들기 어렵다.
1세대 사업이 2세로 승계되지 않는 이유는.
▶알버트 장= “사업을 줄 테니 와서 해라”는 방식은 더 이상 차세대에게 통하지 않는다. 핵심 가치만 공유하고 운영방식은 2세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사업체를 넘겨주면서 과거 방식대로 하라고 하면 젊은 세대는 떠난다.
▶조앤 이= 35년간 사업을 키웠지만 자녀 모두 각자의 전문 분야를 택했다. 1세대는 고령화됐지만 2세는 힘든 식당 일을 기피해 사업 승계가 끊기고 있다.
임대료와 노후 건물, 부동산·금융 환경의 영향은.
▶캐시 이= 건물 가치와 임대료가 올랐다면 관리 수준도 개선돼야 하지만 가격만 오르는 경우가 많다. 테넌트의 경영난이 다시 상권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신축 아파트 공급 증가로 콘도 투자도 위축됐다. 평소 60~70개 수준이던 매물이 올해 약 200개까지 쌓였다.
▶션 모= 일부 건물은 상점을 내부로 배치해 거리와 단절됐고 넓은 도로도 보행을 어렵게 한다. 리틀도쿄와 패서디나 올드타운처럼 걷기 좋은 상권을 조성해야 한다.
▶데이비드 김= 2020~2021년 3%대 금리로 받은 5년 만기 상업용 대출의 재융자 시기가 돌아왔지만 금리 상승과 부동산 수익 정체로 연장이 어려워졌다. SBA 대출 심사도 현금흐름과 상환능력을 더 엄격히 따지고 있다.
▶알버트 장= 2세 창업자는 한인은행 대출이나 한국 자본에 의존했던 1세대와 달리 벤처투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한인 상권은 축소인가, 외연 확장인가.
▶알버트 장= 윌셔와 올림픽 같은 물리적 경계만으로 한인 상권을 정의하기 어려워졌다. 한국 기업도 센추리시티나 오렌지카운티를 선택한다. 중요한 것은 업소의 위치나 숫자가 아니라 한국계 사업가와 차세대의 연결, 한인 공동체의 정체성이다.
▶캐시 이= 한인 상권의 외곽 확산은 1세대가 일군 인구와 비즈니스가 성장한 결과다. 다만 LA한인타운에서는 업소 교체가 빨라지고 장수 브랜드가 줄어 외연 확장과 중심 상권 약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션 모= 한인타운에는 이미 한국인이 아닌 주민과 방문객이 많이 들어와 있다. 떠난 한인 고객을 기다리기보다 이들을 새로운 고객으로 끌어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