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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맘’이 강할까

중앙일보

2026.09.0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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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왼쪽), 김해숙

이정은(왼쪽), 김해숙

강렬한 엄마 캐릭터가 잇따라 극장가를 찾는다. 독립영화 ‘갈매기’(2018)로 전주영화제 한국경쟁 대상을 받았던 김미조(37) 감독의 첫 상업 영화 ‘경주기행’(8월 26일 개봉)과 아동학대 고발 영화 ‘미쓰백’(2018)을 잇는 이지원(45) 감독의 ‘비광’(2일 개봉)이다.

‘경주기행’은 막내딸을 살해당한 엄마 옥실(이정은)이 8년 만에 출소한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딸이 죽은 경주로 기이한 가족 여행을 떠나는 로드무비다. 남편마저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해 딸을 뒤따르자 옥실은 남은 딸들과 복수를 결심한다.

“그놈만 죽이면 우리 가족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옥실은 그렇게 되뇌지만, 수선집에서 바느질하던 손에 피를 묻히기가 쉽지 않다. 걱정 많은 맏딸(공효진), 법대 진학을 꿈꾸는 둘째(박소담), 프로레슬러 셋째(이연) 등 남은 딸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맏사위, 어린이집 다니는 손녀까지 가세하며, 위장 여행은 진짜 가족 여행이 되어간다.

전작 ‘갈매기’에서 성폭행 피해를 입은 중년 여성의 자기 구원을 그린 김 감독이 각본·연출을 겸했다. 실제 4자매 중 막내인 김 감독은 ‘경주기행’에 자신의 가족사도 반영했다. 프로레슬러 설정도 실제 선수로 활동한 셋째 언니에게서 따왔다. 그는 “막내인 저는 부모님 몰래 영화를 하겠다고 난리를 쳤는데, 첫째언니가 자기는 늘 ‘이 아줌마(엄마)를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해서 놀랐다”면서 “엄마는 딸들의 수만큼 얼굴이 다양하다. 그런 점을 영화에 그렸다”고 했다.

영화에서 배우 이정은(56)은 출세작 ‘기생충’(2019) 못지않은 온몸 투혼을 펼쳐낸다. 범인 역의 변요한과 맨몸 육탄전, 자동차 추격전까지 벌인다. 김 감독은 이런 액션 장면에서 옥실과 가족의 절박감을 부각했다. 새벽 5시 야간 산행하며 찍었다는 클라이맥스 복수신은 유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생사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있다.

영화를 준비하며 유가족 심리상담센터 사례를 심층 취재했다는 김 감독은 “유가족이 복수하는 경우는 잘 없다. 시간이 갈수록 아픔을 묻어두려 하기 때문”이라면서 “그럼에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의 선택, 그 후의 얼굴을 관객과 함께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가족 누아르 ‘비광’엔 가족에 변고가 닥치면 염불부터 외는 엄마 기식(김해숙)이 있다. 이지원 감독이 젊을 적 남편을 여의고 여장부로 살아온 친할머니의 이름까지 빌려왔다. 이 감독은 ‘국민 엄마’ 김해숙(71)에게 손 편지까지 써보내 캐스팅했다.

기식은 자식·손주 일로 힘 있는 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날엔 “귀한 자식들 기죽지 말라”고 한여름에도 제일 좋은 모피코트를 꺼내 입는다. 겉은 세 보여도 속정이 많아, 이혼해 분가한 며느리가 천애고아란 게 눈에 밟혀 좋아하는 육개장을 손수 끓여 보낸다. 기식의 내리 사랑은 가진 게 없는 그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안 광에 부적처럼 모셔둔 불상처럼 은밀하고도 강력하다.

화투패에서 제목을 가져온 ‘비광’은 화투 칠 때 혼자서는 온전한 1점 역할을 못 하지만, 5광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비광 패처럼 뭉칠 때 큰 힘을 발휘하는 가족을 그렸다. 남편의 혼외자식인 딸(김시아)의 등장으로 파경을 맞은 스타 부부(류승룡·하지원)가 10대로 자란 바로 그 딸이 곤경에 처하자 바닥까지 추락한 자신들의 처지는 아랑곳 않고 다시 힘을 합친다는 이야기다. 각박한 요즘 세상에 이렇게나 뜨거운 가족이 있을까 싶은 서사의 빈틈마다 관객을 설득하는 정서적 중심축이 바로 기식의 존재다.

영화 시장에서 9월 초는 비수기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장기 상영시 추석 대목을 바라볼 수도 있는 개봉 시기다. 올해처럼 여성 감독의 상업 장르 영화가 나란히 개봉한 적은 드물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평범한 엄마가 범죄를 기획한다는 것부터 신선하다”면서 “엄마 역을 도맡아온 중견 여성 배우들의 연기가 장르 영화의 논리적 비약을 상쇄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나원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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