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아버지를 잃으면 황제도 흔들린다

중앙일보

2026.09.01 08:01 2026.09.01 09:05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리오넬 메시와 아버지 호르헤(왼쪽). 스타에게 아버지는 버팀목이었다. [사진 메시 SNS]

리오넬 메시와 아버지 호르헤(왼쪽). 스타에게 아버지는 버팀목이었다. [사진 메시 SNS]

리오넬 메시가 1일(한국시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유니폼을 내려놓았다. 첫 코치였고, 에이전트였으며 몸이 아픈 자신을 스페인으로 데려가 키운 아버지 죽음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돌아보면 스포츠 역사를 지배한 최고 선수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거대한 균열을 불러왔다. 1993년 여름, 마이클 조던의 아버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강도들의 총격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조던은 농구 황제를 팽개치고 눈물 젖은 빵을 먹는다는 마이너리그 야구 선수가 됐다. 어릴 적 아들이 야구 선수가 되길 바라던 아버지의 뜻을 따라갔다.

그 외도는 조던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났어야 할 황금기 1년 반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농구의 신이 마이너리그 더블A에서 타율 2할 2푼 타자로 고전하는 동안 3연패를 달성하던 시카고 불스의 연속 우승 기록은 멈췄다. 조던이 농구 선수로서 쌓아 올릴 수 있었던 수많은 기록도 허공으로 날아갔다. 조던은 1995년 봄 코트로 돌아와 이듬해 불스를 정상에 올려놓은 뒤, ‘아버지의 날’에 라커룸 바닥에 엎드려 오열했다.

마이클 조던(오른쪽)과 아버지 제임스(왼쪽). [중앙포토]

마이클 조던(오른쪽)과 아버지 제임스(왼쪽). [중앙포토]

타이거 우즈도 비슷하다. 2006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얼 우즈는 군인 출신답게 아들을 ‘그린 위의 완벽한 병기’로 빚어낸 조련사였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 우즈의 내면은 통제 불능의 상태로 폭주했다. 우즈의 아버지는 아들을 군인으로 키우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정작 우즈는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려 했다. 해군 특수부대 캠프에 들어가 군사훈련을 하면서 군인이 되려 했다. 전투화를 신고 구보하고 낙하산 강하 훈련을 감행하는 과정에서 무릎과 아킬레스건이 심각하게 파열됐다.

결국 군인을 포기하긴 했지만 목표를 잃어 충격적인 성추문 스캔들을 냈다. 골프선수로서 전성기인 30대를 우즈는 기나긴 부상, 수술, 이혼, 그리고 입스라는 지옥 같은 암흑기로 만들어버렸다.

타이거 우즈와 아버지 얼(왼쪽). [AP=연합뉴스]

타이거 우즈와 아버지 얼(왼쪽). [AP=연합뉴스]

어머니가 승패와 상관없이 돌아가 쉴 수 있는 안식처라면, 아버지는 내면의 규율과 승부욕을 통제하는 초자아일 것이다. 스포츠 스타에게 아버지는 선수 인생을 설계한 존재였기에, 상실은 자아의 설계도를 잃는 일과 같다.

팬들은 초인으로 기억하지만, 그 이면에는 늘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소년의 간절함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아버지의 부재는 스포츠 황제들을 순식간에 길 잃은 소년으로 되돌려 놓기도 한다. 아버지를 잃은 후 무너져 내리는 그 시간들은 완벽하기만 한 것 같던 그들도 피와 눈물을 가진 한 사람의 아들이었음을 증명하는 인간적인 순간이 되기도 한다.

조던과 우즈는 전성기이던 서른 즈음 아버지의 죽음을 맞았다. 조던은 전성기의 공백을, 우즈는 육체와 명예의 붕괴를 대가로 치렀다. 메시는 서른아홉이다. 아버지가 그만큼 오래 곁을 지켜준 덕분에, 메시는 두 선배보다 훨씬 긴 시간 정상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다. 메시 팬들에게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성호준([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