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못 하나 함부로 박지 못하는 한옥 마당에 부채꼴로 땅이 파였습니다. 인왕산 자락, 사직단 바로 옆 운경고택입니다. 2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이 집이 김동희 작가의 전시 ‘다시 도착한 집’으로 손님을 맞습니다. 현대미술 작품 16점 가운데 앞마당을 파낸 ‘육분원을 위한 굴토’와 안채와 마당을 잇는 ‘흰 계단 1, 2’는 파격 그 자체입니다. 퍼낸 흙은 컨테이너에 보관했다가 전시가 끝나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굳이 왜?’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직접 걸어보니 답이 있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를 지나 뒤뜰 장독대 위 언덕까지, 작품을 따라 걷는 동안 이 집은 눈으로만 보는 집이 아니라 몸으로 만나는 집이 됐습니다. 재단이 허락한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닙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이 서울식 한옥엔 1953년부터 12대 국회의장 운경(雲耕) 이재형(1914~1992)이 살았고,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유족은 재단을 세워 집을 지켜왔습니다. 세월을 온몸으로 맞아온 고택을 지키는 일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매해가 보수의 연속이었고, 1990년대 말에 기둥 몇 개를 바꾸려던 작업은 2년에 걸쳐 집을 해체하고 다시 짜 맞추는 공사가 됐습니다.
김동희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운경고택. 이종근 촬영. [사진 운경재단]
김동희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운경고택 사랑채. 이종근 촬영. [사진 운경재단]
이 고택을 보고 싶다는 사람은 늘 많았습니다. “재단에 출연한 자산이니 우리만의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너무 몰리게 할 수도 없고….” 보존과 공개 사이에서 고민하던 운경의 손녀 이미혜 운경재단 이사가 찾은 답이 전시였습니다. 빈집으로 여는 게 아니라 이 집이 들려줄 이야기와 함께 열자는 것. 2019년 첫 전시 이후 재단 기획전으로는 네 번째입니다. 여는 방식에도 결이 있습니다. 상시 개방은 없습니다. 예약제, 유료, 하루 5회, 회당 20명. 이 20명을 그는 “할아버지 집에 온 손님”이라 불렀습니다.
손님에게 내놓는 것은 작품만이 아닙니다. 9일엔 기획자 우혜수와 작가의 대화가, 10월 7일엔 건축가 조정구와 서촌 골목을 걷는 프로그램이 열립니다. 미술 전시이면서 한옥과 동네를 다시 보는 자리입니다. 그동안 운경고택의 역할은 계속 바뀌어 왔습니다. 궁터였고, 한 정치인의 집이었고, 재단이 지키는 기록이었고, 이제 격년으로 작가를 들이는 전시장입니다.
이 이사는 “이 집에 앞으로 어떤 역할을 줄지가 늘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고택을 지키는 길이 봉인만은 아닙니다. 문을 열고 손님을 들이는 것도 지키는 방법입니다. 운경고택은 그렇게 사람들과 살아가는 법을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