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가 폭발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2030년 2조 달러(약 2700조원) 규모로 급팽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에 따라 칩 하나의 성능을 넘어, 마치 하나의 도시처럼 반도체의 관제센터(로직)·창고(메모리)·도로(광통신)·복합단지(첨단 패키징)를 체계적으로 묶어내는 역량이 반도체 패권의 새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장석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팀장(상무)은 1일 아시아 최대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 타이완’에서 메모리 반도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큐브(CUBE)’를 제시했다. 용량(Capacity), 최적화(Utilization), 대역폭(Bandwidth), 전력 및 열 효율(Efficiency)의 앞글자를 딴 명칭이다.
정육면체(큐브)를 뜻하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메모리를 넓게 펼치는 대신 위로 쌓아 올리는 방식, 즉 평면(2D)이 아닌 입체(3D)로 구성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인쇄회로기판(PCB)의 평면 면적을 넓히지 않고 수직으로 쌓아올려 용량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또 메모리의 배치를 최적화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다. 이를 통해 데이터 이동 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줄여, 와트당 성능도 높인다는 구상이다.
칩과 칩 사이를 잇는 ‘연결’ 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올해 행사가 실리콘 포토닉스와 광학 부품 패키징(CPO)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전했다. 실리콘 포토닉스가 전깃줄 대신 ‘빛의 길’을 칩 속에 직접 만들어 데이터를 보내는 기술이라면, CPO는 광통신 부품을 반도체와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내는 기술이다.
지난 31일 세미콘 타이완에 앞서 열린 실리콘 포토닉스 포럼에서도 데이터 이동 병목을 해소하려면 기존 구리 배선에서 빛 기반 전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도 실리콘 포토닉스 기반 광학 패키징 플랫폼(‘COUPE’)을 강조하고 나섰다.
반도체 공룡들이 메모리를 쌓아 올리는 것부터 데이터를 빛으로 나르는 것까지 뛰어드는 이유는 AI가 만든 병목, 바로 ‘데이터 이동’ 때문이다. AI가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영상·음성까지 한 번에 처리하는 방식(멀티모달)으로 똑똑해지면서 오가는 데이터양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대만 중앙통신사(CNA)에 따르면 TSMC의 리샹 AI·고성능컴퓨팅(HPC) 사업개발 담당 이사는 “지금은 데이터를 옮기는 데만 시스템의 최대 60%가 쓰이다 보니 값비싼 AI 가속기를 사놓고도 40%도 채 못 돌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새로운 시대에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단순히 더 나은 모델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가장 통합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데이터 병목을 뚫기 위한 설비·기술 투자도 시장을 키우고 있다. SEMI는 AI 데이터센터 구축 열풍에 힘입어 2030년 세계 반도체 시장이 2조 달러(약 2738조원)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이번 세미콘 타이완도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번 행사엔 130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해 4300개 부스를 운영하며, 참관객은 1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