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유층 가정 사이에서 대학 입학 전후 1년을 쉬며 여행과 인턴십, 봉사활동을 경험하는 ‘프리미엄 갭이어’가 새로운 교육 투자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프로그램은 비용이 9만달러를 넘는다. 대학 1년치 학비에 맞먹거나 그보다 비싼 금액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나탈리아 버트란은 아들의 대학 첫해에 쓸 예정이던 최대 9만달러를 갭이어 프로그램에 투입했다. 아들은 지난해 8개월간 세계를 돌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브라질 은행을 방문했으며, 앱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프로그램 비용과 여행·개인 경비를 합쳐 약 8만달러가 들었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보코니대에 진학했다.
이 같은 고가 프로그램은 단순한 여행 상품과 다르다. 일정에 해외 체류뿐 아니라 기업 인턴십, 봉사활동, 기술 교육, 진로 상담 등을 포함해 학생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설계한다. 갭이어 컨설턴트 홀리 불에 따르면 최근 학생과 부모들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방식보다 인턴십과 프로젝트가 결합된 구조화된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비용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일반적인 갭이어 프로그램은 2만~2만5000달러 수준이지만,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의 다이나미 인턴십 이어는 1년 과정에 3만8650달러를 받는다. 국제여행과 직무 배치, 기술 부트캠프를 결합한 퓨처스 포지의 프로그램은 약 8만2000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일부 세계 일주 프로그램의 가격은 9만4500달러까지 올라간다.
부모들이 거액을 지불하는 이유는 대학 학위만으로는 입시와 취업 경쟁에서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불안 때문이다. 갭이어를 통해 자녀가 진로를 탐색하고, 대학 지원서나 이력서에 넣을 만한 경험을 쌓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대학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학위의 투자 가치에 대한 의문이 커진 점도 수요를 키우고 있다.
다만 갭이어의 효과가 비용만큼 확실한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2020년 콜로라도칼리지와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연구진은 갭이어를 보낸 학생들의 대학 성적이 더 높다고 분석했지만, 이들 가운데는 애초에 부유한 가정 출신이거나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이 많았다. 연구진은 갭이어 자체의 효과와 학생들의 가정환경·학업 배경을 분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다. 갭이어협회 회원 프로그램은 6년 만에 약 90개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저렴한 선택지는 줄어드는 추세다. 연방 예산 삭감으로 아메리코어와 평화봉사단 관련 기회가 축소됐고, 항공료와 숙박비, 보험료 상승으로 과거 1만달러 안팎이던 프로그램 비용도 2만달러에 가까워졌다.
갭이어는 대학과 달리 고등교육 인증 체계 밖에 있어 프로그램의 질과 교육 내용에 대한 통일된 기준도 없다. 결국 수만달러를 들여 얻는 경험이 실제로 대학 학위나 취업 경쟁력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지는 학생과 가정의 선택에 달려 있다.
보스턴칼리지 학생 대니얼 소벨은 말레이시아에서 보낸 갭이어를 통해 진로 방향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은 실제 경험을 적용할 때 훨씬 더 가치 있어진다”며 “정해진 환경 밖에서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