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한국의 발전상은 어떤 사진으로 찍어 남겨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입니다.” "
다큐 '사진의 얼굴'(감독 고희영)에 담긴 구와바라 시세이의 모습. 구순에 이른 지금도 어디에 가든 카메라 2대와 3종류의 렌즈를 챙긴다. 최근엔 아이패드로도 즐겨 촬영한다는 그는 여전히 생생한 현역이었다. 사진 숨비
구순의 일본 보도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는 60여년간 100번 넘게 찾아와 10만여 컷 사진에 담은 대한민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기록”이란 철학으로 일본 미나마타병 피해자, 한국 근현대사 현장을 카메라로 증언해온 그의 작가인생을 돌아본 첫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감독 고희영)이 2일 개봉했다. 개봉에 맞춰 방한한 그를 최근 서울 을지로 영화홍보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1969년 한국에 취재 온 그와 일본어 통역으로 만나 이듬해 결혼한 한국인 아내 최화자(82)씨도 함께였다.
한·일 수교 한 해 전인 1964년 서울대생들의 한일 회담 반대 시위 현장에서 처음 한국 취재를 시작한 그는 2024년 대통령 탄핵 찬·반 시위 등 최근까지 한국의 역사 현장을 담아왔다.
다큐 '사진의 얼굴'에 실린 1964년 서울대생들의 한일 회담 반대 시위 장면. 구와바라 시세이가 처음 한국에 특파원으로 취재와 찍은 현장이었다. 사진 숨비
한반도와 인접한 일본의 시마네현 출신이라, 중학생 때 발발한 한국전쟁부터 관심이 컸다고 한다. 1956년 도쿄농업대에 진학해 만난 한국인 피란민 친구에게 ‘아리랑’ ‘도라지’ 등 민요가락을 배웠다. “이렇게 젓가락 장단을 맞춰 불렀죠. 잘은 못 불러도 첫 소절만은 아직도 기억해요.”
정겨운 추억에 지긋이 감은 한쪽 눈은 의안이다. 어릴 적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다. 다큐에서 그는 오히려 그 덕에 누구보다 렌즈 초점을 잘 맞춰 사진가가 됐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 외눈으로 1962년 일본 매체조차 주목하지 않은 미나마타병 참상을 첫 사진전으로 세상에 내보였다. 일본사진비평가협회 신인상 수상에 힘입어 “언젠가 사진가가 되면 꼭 취재하리라” 다짐한 한국으로 향했다. 휴전 11년째인 1964년 여름, 김포에서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서울을 마주했다. 피폐하지만 생명력이 넘쳤다. 20대 청년 구와바라에게 “공권력의 억압에도 꺾이지 않는 열망이 폭발한 나라”이자 “사진 찍을 주제가 무궁무진한 보물창고”였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 1965년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찍은 파월 병사와 어머니의 마지막 작별인사 장면을 꺼냈다. 다큐 '사진의 얼굴' 개봉(9월 2일) 홍보차 내한한 그를 지난달 26일 서울 을지로의 영화 홍보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나원정 기자
잊지 못할 사진을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아이패드에 간직해온 1965년의 흑백사진 ‘어머니와 면회 중인 파월 병사’를 꺼내 보였다. 여의도 비행장에서 마지막일지 모를 작별을 나누던 모자에게서 “한국말을 몰라도 절절함이 전해왔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군 철수가 한창이던 1973년엔 자비를 들여 베트남전 현지를 찾기도 했다.
다큐 '사진의 얼굴'(감독 고희영)에 담긴 구와바라 시세이가 1960년대 한국을 촬영한 흑백사진. 청계천 빈민가, 민주화운동, 동두천 미군 기지촌, 문경의 도자기와 도공까지 우리시대의 얼굴을 포착했다. 그렇게 탄생한 ‘구와바라표 흑백사진’은 “호소하고자 하는 걸 포착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와 함께 심금을 울렸다. 사진 숨비
1965년 군부정권이 고려대 교정 안까지 무장군인을 투입해 시위대를 마구잡이로 군용차에 잡아넣던 장면을 망원렌즈로 찍다 헌병에 붙잡힐 뻔한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다큐 속에서 그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개새끼’ ‘일본 쪽바리’였다. 왜 이처럼 못사는 모습을 그것도 하필 일본인이 찍느냐는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동서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 지금도 긴장이 계속되는 분단국가의 분투”가 그의 카메라를 번번이 붙들었다.
캄보디아·베트남·러시아 등 세계각지를 누비면서도 번번이 한국으로 발을 돌렸다. 북한도 일곱 차례 찾았다. 적나라한 현실을 담았다가 입국이 영영 금지됐다.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였기에 평생 가난과 싸웠지만, 자유로웠다. 그가 일생 마지막으로 찍고 싶은 사진은 “통일이 된 한반도”다.
다큐를 연출한 고희영 감독은 전작 ‘불숨’(2019)에서 천한봉 도예명장을 조명하던 중 천 명장이 아껴온 사진 한 장에 매료돼 구와바라 시세이를 알게 됐다. 바로 고등학생 때 사고로 죽은 천 명장의 외아들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다.
다큐 '사진의 얼굴'(감독 고희영)에 담긴 구와바라 시세이 침실. 천장까지 들어 찬 사진이 곧 그의 삶이었다. 고희영 감독은 전작 다큐 조명하며 구와바라 시세이를 알게 됐다. 천 명장이 고등학생 때 사고로 잃은 아들의 생전 흑백사진이 구와바라 것이었다. 서울서 문경까지 비포장도로였던 1970년대 한국 도예가들을 찾아와 취재했다는 그는 이후로도 10년에 걸쳐 도예가와 그 가족들까지 연을 맺어왔다. 미나마타병 피해자와 유가족을 촬영 이후로도 거의 매년 찾아가 안부를 살펴온 것처럼 말이다. 사진 숨비
고 감독이 사진 사용을 허락받으러 찾아간 구와바라의 도쿄집엔 그가 평생 그렇게 역사를 나눠온 사람들의 사진이 천장까지 가득 차 있었다. 평생 찍은 사진 100만여장 중 10만장이 “우리 근현대사의 공백을 메워주는 기록이었다”고 고 감독은 말했다. 3년에 걸쳐 촬영한 이번 다큐엔 구와바라의 사진 1000컷을 엄선해 실었다.
다큐 '사진의 얼굴'(감독 고희영)에 담긴 구와바라 시세이(오른쪽)와 한국인 아내 최화자씨.사진 숨비
고 감독은 고령인 구와바라의 사진 데이터베이스(DB) 작업이 시급하다고도 했다. “한국을 담은 10만여 장은 우리가 두고두고 봐야 할 사진”이라며 “다큐를 만들면서 한국정부의 문화훈장 후보로 구와바라 선생을 추천하는 추천서를 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다큐가 그의 공훈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을 보고 싶다면
구와바라 시세이의 청계천 사진은 오는 30일까지 서울 충무로 김영섭사진화랑에서 열리는 사진전 ‘23년의 재회, 청계천의 귀환’에서도 전시되고 있다. 오는 13일까지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바람의 길목 DMZ’에선 1965년 그가 흑백 필름에 담은 분단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달 30일까지 서울 충무로에서 진행되는 구와바라 시세이 청계천 사진전 포스터. 사진 김영섭사진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