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나는 업무보고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원세훈 국정원장을 잠시 붙잡아 앉히고 물었다. 그는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 출신이다.
" 네, 맞습니다만…. "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가 두 번째 질문을 받았다.
" 임채진 검찰총장도 서울대 법대 출신이지? "
" 네, 맞습니다. 제가 1년 선배입니다. "
나는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하겠다고 하는데, 나는 적절하지 않다고 봐요. 권양숙 여사도 소환하지 않고 부산의 호텔에서 조사했으니, 노 대통령도 검찰이 봉하마을 근처로 내려가 방문조사를 하는 게 좋겠어요. 국정원장 자격이 아니라 같은 학교 선배 입장에서 임 총장에게 한번 얘기해 봐요. "
이명박 대통령과 원세훈 국정원장이 국무회의 직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대검 중수부의 수사가 절정으로 치닫던 무렵, 나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지키라”는 메시지를 잇따라 타전했다. 검찰에게 직접 지시할 순 없었다. 그건 수사 개입으로 위법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검찰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내 국정철학과도 맞지 않았다. 결국 메신저를 활용해야 했다. 그중 한 명이 원 원장이었다.
메신저 명단에는 김경한 당시 법무부 장관도 있었다. 서울고검장 출신의 검찰 대선배인 그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 노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좀 지나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전직 대통령인데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라고 해주세요. "
2009년 6월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회의에 앞서 김경한 법무부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동기 민정수석 등 내 청와대 참모들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노 전 대통령에게 예우를 갖춰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내가 ‘노무현 수사’의 총지휘자였던 것처럼 주장하면서 나를 공격하는 이들,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알고 있는 국민이라면 의외라고 생각할 거다.
이른바 ‘좌파 진영’은 내가 그 비극의 원흉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몰아붙였다. 그게 ‘정치적 프레임’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렇다 해도 정도가 심했다.
2009년 5월 1일 새벽 검찰 조사를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을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맨 왼쪽은 당시 변호인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마치 모두가 ‘노무현 호위무사’였던 양 애통해하면서 책임을 지울 희생양을 찾았다. 그게 바로 나였다. 그들에 대한 내 생각은 기사 후반부에 자세히 소개하겠다.
삼계탕집서 반갑게 인사하던 ‘백수 노무현’
나는 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노 대통령을 최대한 배려하려고 했을까. 그 사연의 서두를 1996년 ‘서촌’의 한 식당에서 열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