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주 전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 6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23) 사건의 부실수사 의혹을 조사 중인 검찰이 박성주(60)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등 전·현직 경찰 지휘부 4명을 기소했다.
광주지검은 2일 “장윤기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박 전 본부장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장윤기 사건 처리 당시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장과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장, 성폭력범죄수사계장 등 3명도 같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본부장 등은 장윤기 사건을 담당한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이 ‘여고생 살인 사건과 베트남 여성 스토킹·성폭행 사건을 병합 수사하겠다’고 보고·건의했음에도 이를 묵살한 혐의를 받는다.
특히 박 전 본부장은 당시 실무진에게 “강간은 조용히 하자. 일부러 숨기는 것은 아닌데, 굳이 우리가 먼저 꺼낼 것은 아니지 않냐”며 “‘강간 사건은 조용히’, ‘오픈되지 않게 하라’, ‘살인 사건과 스토킹·성폭행 사건은 각각 따로 해라’”라고 지시한 혐의다. 박 전 본부장 지시에 따라 국수본 실무진은 광산서 수사팀의 사건 병합 건의를 두 차례 묵살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태훈 광주지검 차장검사가 2일 오후 광주지검 중회의실에서 박성주 전 국가수사본부장 등 국수본 관계자 4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장윤기는 이채원(16)양 살해 이틀 전인 지난 5월 3일 아르바이트 동료인 베트남 국적 여성(26)을 스토킹하고 성폭행했다. 하지만 당시 스토킹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건을 정식으로 접수하지 않고 현장에서 종결했다. 이후에도 경찰은 신고자 안전을 확인하는 ‘사후 콜백’도 하지 않는 등 안일하게 대처했다.
광산서 수사팀은 이틀 뒤 장윤기가 이양을 살해하자 살인과 스토킹·성폭행 사건이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두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 지난 5월 8일과 11일 두 차례 광주경찰청을 통해 두 사건에 대한 병합 수사 계획을 국수본에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남양주 스토킹 보복 살인’ 사건을 부실 대응해 국민적 비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박 전 본부장은 장윤기 사건도 ‘스토킹 사건에 대한 초동 조치가 적절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살인’이라는 비난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살인과 스토킹·성폭행의 분리 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본부장의 사건 분리 지시에 따라 광산서 수사팀은 두 사건을 별건으로 검찰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장윤기는 무기징역 또는 사형으로만 처벌할 수 있는 ‘강간 등 살인죄’가 아닌, ‘일반 살인죄’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됐다.
박성주 전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 6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이후 보완수사를 통해 ‘강간 등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고, 지난달 31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박 전 본부장의 지시에 의해 사건을 담당한 광산서 수사팀이 장윤기의 강간살인죄 혐의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신태훈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일선 수사에 대한 경찰 수사 최고 지휘부의 부당한 개입을 규명한 사례”라며 “향후 유사한 방식의 수사 개입을 차단하고, 일선 수사기관의 정당한 수사권 행사를 보장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전 본부장은 이날 검찰 기소 이후 입장문을 내고 강하게 반발했다. 박 전 본부장은 “저는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을 왜곡 축소 또는 부당한 지시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면서 “철저히 수사할 것, 사건의 성격상 보안을 유지할 것 등 지극히 정상적이고 통상적인 업무지시만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광주지검이 무리하게 공소제기를 한 것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하고, 재판 절차에서 광주지검의 무리한 기소였다는 점을 당당히 밝히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