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알프스산맥 인근 마을인 스위스 블라텐에선 빙하 붕괴로 인한 홍수로 마을의 90%가 휩쓸렸다. 사고 4달뒤인 9월 물에 잠긴 블라텐의 한 주택과 나무의 모습. AP=연합뉴스
최근 발생한 네팔 대홍수 이후 남미의 세 나라가 떨고 있다. 페루·아르헨티나·칠레가 공유하는 안데스산맥에서 이번 재해와 같은 ‘빙하호 범람(GLOF)’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빠르게 녹아 호수가 늘고, 암석 지반이 약해지면서 이들 지역에 홍수와 산사태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UPI통신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장 급박한 위기에 직면한 곳은 페루다. 파울라 모셸라 페루 국립빙하·산악생태계연구소(INAIGEM) 국장은 현지 언론에 “페루 내 528개 호수가 범람 위험을 안고 있으며, 이 중 58개는 고위험군”이라고 말했다. 특히 안데스산맥 인근인 앙카시 지역엔 도시와 주요 기반시설이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경로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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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카코차 호수 붕괴하면 주민 12만 명 위험
홍수 위험이 큰 페루 팔카코차 호수의 모습. 이 호수 아래에 있는 우와라스시엔 12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사진 저먼와치
대표적인 곳이 팔카코차 호수다. 이 호수에서 남서쪽으로 23㎞ 떨어진 도시 우아라스에는 12만여명이 살고 있다. 약 1700만㎥의 물을 담고 있는 호수에 온난화로 녹은 빙하 일부가 떨어질 경우 거대한 파도가 둑을 무너뜨려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도심 전체를 삼킬 수 있다. 전례도 있다. 1941년 팔카코차 호수가 범람해 우아라스시의 3분의 1이 파괴됐다. 최대 7000명의 주민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아르헨티나에선 네팔과 같은 대홍수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2005년 산후안주(州) 에리소스 호수가 터지면서 67분 만에 3100만㎥의 물이 쏟아져 250㎞ 이상을 쓸고 내려갔다. 해당 지역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아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2026년 2월 아르헨티나 토레 호수의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2013년에도 안데스산맥 남쪽 파타고니아 지역 인근 웁살라 빙하 부근의 얼음벽이 무너짐에 따라 갇혀 있던 막대한 물과 빙하 조각이 오넬리 만 해역으로 쏟아져 내리며 쓰나미급 파도가 발생했다. 현재 가장 위험에 노출된 곳으로 꼽히는 건 유명 관광도시 엘찰텐이다. 이 지역의 토레 호수가 빙하 붕괴 등으로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칠레 파타고니아 지역 빙하의 모습. EPA=연합뉴스
2만6000개 이상의 빙하를 보유한 칠레에도 비상이 걸렸다. 칠레는 수도권과 중부 지역 수백만 명의 식수, 수력발전소와 광산 등이 안데스산맥 일대 하천에 의존하고 있다. 빙하가 붕괴할 경우 경제·사회적 타격이 상당할 수 있다. 아이센과 마젤란 등 파타고니아 일대도 빙하가 급속하게 녹으면서 위험이 커지고 있다.
유럽 알프스도 산사태와 홍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스위스 블라텐에선 빙하 붕괴로 인해 인근 산 전체가 무너지는 거대 붕괴가 발생해 약 900만㎥ 규모의 암석과 얼음이 한꺼번에 계곡으로 쏟아져 마을 면적의 약 90%가 매몰됐다. 빠른 사전 경고로 주민 300여명이 대피해 인명피해는 1명에 그쳤다. 2017년에도 스위스 본도에서 대규모 산사태로 약 310만㎥의 암석과 토사가 물과 섞여 마을을 덮쳐 등산객 8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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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중국도 홍수 불안…네팔 피해복구 여력 없어
1일(현지시간)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대 병원의 한 벽에 최근 발생한 대홍수로 인해 실종된 이들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붙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네팔 대홍수가 발생한 히말라야산맥에서도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하이드롤로지(Journal of Hydrology)’에 따르면 힌두쿠시·카라코람·히말라야 지역 빙하호는 2000년부터 2022년까지 325개 늘었다. 같은 기간 빙하호 면적은 72.58㎢ 확대됐다. 네팔을 비롯해 인도와 중국 등에서 또 다른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위험이 예견되지만, 이들 국가의 방재 노력은 역부족인 실정이다. 각국 정부는 위성 감시와 수문 센서를 동원해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만, 붕괴의 속도와 규모를 감당하기에는 기존 방재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UPI는 지적했다.
대규모 피해를 본 네팔 역시 자체 복구에 힘겨워하고 있다. 네팔 정부가 추산한 홍수 피해 규모는 네팔 국내총생산(GDP)의 10분의 1 수준인 50억 달러(약 6조8300억원)다. 하지만 네팔 정부로선 이미 공공부채가 GDP의 절반에 이르고 해외 원조도 부족해 복구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이날 기준 네팔과 중국 당국이 집계한 누적 사망자 수는 1066명, 실종자는 494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