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시절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고(故) 김남주 시인이 유죄 판결 46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부장 한대균)는 2일 오후 김 시인의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등 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시인이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 폭행·협박 등 가혹행위를 받으며 조사를 받은 만큼 당시 받은 자백 진술의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재판 과정에서 김 시인이 자백 취지로 진술한 사실은 있지만, 앞선 불법 수사의 심리적 여파가 남아 있었을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남민전은 1976년 반유신 민주화운동 등을 목표로 결성된 지하 조직이다. 이들은 서울 시내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벌여 80여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검거됐다. 이는 유신 말기 최대 공안사건으로 꼽힌다.
김 시인은 1978년 남민전 기관지에 저항시를 싣고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 제작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체포돼 1980년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김 시인은 옥중에서도 우유갑을 뜯어서 나온 은박지에 뾰족하게 간 칫솔로 시를 썼다. 옥중에서 첫 시집 『진혼가』에 이어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등을 펴냈다. 1988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으나, 5년 만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2024년 6월 재심을 청구했고, 같은 해 10월 재판부가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당시 법원은 김 시인이 영장 없이 강제 연행된 뒤 48일 동안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김 시인 측은 재심 재판에서 김 시인의 활동은 국민 기본권을 억압하던 유신체제에 맞선 행위였다며 무죄 선고로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