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더 버스’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내분 사태를 생생하게 담은 다큐멘터리다. 사진 넷플릭스 캡처
2010 남아공 월드컵의 프랑스와 2026 북중미 월드컵의 한국은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다. 양국 모두 황금세대를 구축하고도 무능한 사령탑과 내분 끝에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사를 맞았다. 조별리그에서 멕시코와 남아공에 연달아 무릎을 꿇은 패배의 궤적도 똑같다. 대회가 끝난 뒤 의회 청문회로 불려 간 비극적 결말까지 판박이다.
올여름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버스: 프랑스 축구대표팀 반란 사건’은 남아공 베이스캠프 지명을 딴 이른바 ‘크니스나 사태’의 민낯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 하프타임 라커룸에서 레몽 도메네크 감독의 질타에 공격수 니콜라 아넬카가 반발했다.
프랑스 유력지 레퀴프가 1면에 아넬카가 도메네크에게 패륜적 욕설을 퍼부었다고 대서특필했다. 보도된 극단적인 욕설 내용은 결과적으로 과장 보도였다. 하지만 여론에 떠밀린 프랑스축구협회는 대회 도중 아넬카를 퇴출했다. 이에 격분한 선수들은 훈련을 전면 거부하고 버스 안에 틀어박히며 초유의 집단 파업으로 맞섰다.
점성술에 기댄 선수 선발과 주장 완장을 둔 갈등으로 진작에 신망을 잃은 도메네크는 다큐에서 “집단 파업이 월드컵 통틀어 너희들이 보여준 가장 훌륭한 팀워크”라고 조롱했다.
언론은 “교만하고 배부른 백만장자들의 파업”이라 성토했고, 공항에 몰린 팬들은 날계란을 던졌다. 도메네크 감독 자택에는 살인 경고장까지 붙었다. 도네메크는 중대 과실로 경질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진상 규명을 지시했다. 로즐린 바슐로 체육장관은 의회에 출석해 “권위 없는 감독, 혼란한 협회, 어린 선수를 괴롭히는 유치한 깡패를 봤다”고 질타했다. 협회장은 선수단을 방패막이 삼아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참패하고 쓸쓸히 귀국한 한국의 현실과 판박이다. 김경록 기자
16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2026 북중미 월드컵의 한국도 비슷한 길을 갔다. 프랑스만큼의 막장 수준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평행이론을 완성해갔다. 대한축구협회는 여론과 절차를 외면한 채 한 감독에게 두 번째 월드컵 지휘봉을 쥐여줬고, 홍명보 감독은 역대급 스쿼드를 쥐고도 전술적 무능과 선수단 관리 실패로 자멸했다.
특히 대표팀은 베테랑이 주도한 취재 거부(미디어 보이콧)를 두고 선수단 내부에 균열이 생겼다. 남아공과의 3차전에서 주장 손흥민은 선발 제외됐다. 조별리그에서 패배를 안겨준 상대가 멕시코와 남아공이라는 점마저 기이할 정도로 일치한다.
불명예 퇴진한 홍 감독 역시 귀국길 맹비난과 살해 협박에 직면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무능한 사람을 지휘관으로 발탁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며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닮은 공개 질타를 쏟아냈다. 국회 청문회에서 최민희 의원이 코칭스태프를 향해 “왜 졌느냐”는 본질을 비껴간 문책성 질문을 던진 풍경도 2010년 프랑스 의회와 다르지 않았다.
2010년 이후 프랑스는 멈춰 선 버스의 엔진을 통째로 갈아치웠다. 협회 지도부 교체와 유소년 육성, 전술 철학의 전면 쇄신을 감행한 프랑스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을 일궈냈고 이후 카타르 준우승, 북중미 4위를 달리며 세계 정상의 위용을 되찾았다. 16년 뒤 누군가 한국판 ‘더 버스’를 만든다면, 그 결말은 다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