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마켓 나우] 연준의 독립, 75년 만에 시험대에 서다
중앙일보
2026.09.02 08:06
2026.09.02 13:35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 『관세 이야기』 저자
1950년 상반기 미국 경제는 전쟁 후유증을 완전히 털어버리는 듯했다. 경제 성장률은 14%에 달했지만 물가는 오히려 하락하는 이상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그해 6월 터진 한국전쟁으로 평온은 순식간에 깨졌다.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에 미국 가계는 패닉에 빠졌다. 설탕·나일론·통조림·소고기 등 생필품의 배급제를 걱정한 소비자는 사재기에 나섰고, 기업들도 산업 원자재를 앞다퉈 확보했다.
한국전쟁 직전 130억 달러였던 국방예산도 73% 급증했다. 경제 전반에 총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자 안정되었던 물가는 단숨에 8% 이상 급등했다. 물가 안정을 책임지는 연방준비제도(연준)에도 비상이 걸렸다.
연준은 물가 급등을 우려했지만 손발이 묶여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비 마련을 위해 도입한 국채금리 고정제가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채 금리는 단기 0.375%, 장기 2.5% 상한선에 묶여 있었다.
국채 수요가 줄어 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으면 연준은 발권력을 동원해 무제한 국채를 사들여야 했다. 재무부가 발행한 국채 가운데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한 물량도 고스란히 연준 몫이었다. 물가 급등에도 금리를 통제할 수 없자 연준 안팎에서 불만이 쌓여갔다.
연준이 공개적으로 금리 고정의 폐해를 지적하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51년 1월 말 연준 정책위원 전원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였다. 전례 없는 대통령 직접 대면을 통해 연준의 반발을 눌러보려는 시도였다.
여론이 이미 등을 돌린 뒤였다. 인위적 저금리가 서민의 희생 위에 은행 배만 불린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결국 의회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토머스 맥카비 연준 의장이 사임했다.
그해 3월 연준과 재무부는 통화와 재정 정책의 역할을 분리하기로 합의했다. 연준은 금리 조정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되찾았고 윌리엄 마틴 신임 의장은 선제적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재무부는 통화정책에 개입하지 않고 연준은 정부 빚을 대신 갚아주지 않는다”는 이 75년 묵은 원칙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지난 5월 취임한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연준의 자산 보유 규모를 정할 때 재무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재무부는 일본과 손잡고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한편, 장기금리 안정을 위해 국채를 직접 사들이며 과거 연준의 영역이었던 자리에 성큼 발을 들여놓고 있다. 시장은 좀처럼 꺾이지 않는 시중금리로 연준 독립의 필요성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중이다.
연준의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과 역사의 반복 여부를 떠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금리를 정치에 맡겼을 때, 시장은 대가를 치른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 『관세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