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인간의 시간을 달을 끌어들여 낭만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달이 어디 옛사람만 보았겠는가? 장차 먼 미래의 사람까지도 다 볼 수 있는 게 달이다. 이와 달리 사람은 달을 기껏해야 100년 남짓 보다가 떠난다. 사람뿐이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들이 다 그렇게 떠난다. 한해살이식물이 있는가 하면, 여러해살이식물이 있고, 하루살이가 있는가 하면 천년학이나 만년거북처럼 오래 산다는 동물도 있다. 그러나 설령 수천수만 년을 산다 한들 어찌 천지일월(天地日月)의 장구함에 비하겠는가! 그래서 시인 이백(李白)은 ‘부천지자, 만물지역려(夫天地者, 萬物之逆旅)’라고 읊음으로써 천지를 여관에 비유하고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잠시 쉬었다 가는 나그네에 비유했다.
今:이제 금, 曾:일찍 증, 經:지날 경, 曾經:일찍이...한 적이 있다. 照:비출 조. 옛사람은 오늘의 달을 볼 수 없지만 오늘의 달은 옛사람을 보았다네. 33x66㎝.
흔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즉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하지만 꽃은 그래도 해마다 같은 모습으로 핀다. 당나라 시인 유희이(劉希夷 혹은 宋之問)는 ‘년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즉 ‘해마다 꽃은 같은 모양인데, 해마다 사람의 모습은 같지 않네’라며 늙음을 아쉬워했다. ‘년년세세(年年歲歲)’와 ‘세세년년(歲歲年年)’이라는 첩어(疊語·글자 겹침)와, ‘화상사(花相似)’와 ‘인부동(人不同)’이라는 대비를 활용해 지은 명구로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아무리 애써도 달을 영원히 보는 영생은 불가능하기에 인간은 종교와 역사를 통해 영생을 추구한다. 미래의 달을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다. 바르고 가치 있게 살면 천국·불국 등에 가서 영원히 달을 보거나, 역사에 이름이 남아서 그 이름 위에 오래도록 달빛이 비칠 것이다. 월인천강(月印千江)! 강이면 어디에라도 달빛은 비치는 법! 내 삶이 아름다우면 내 이름 위에도 영원히 달빛이 비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