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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김은지의 당찬 대답

중앙일보

2026.09.02 08:12 2026.09.0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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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최근 가장 뜨거운 바둑기사는 19세 김은지 9단이다. 그는 지지옥션배에서 막판 파죽의 6연승으로 숙녀팀 우승을 결정지었다. 지난달 22일엔 2026NH농협여자리그에서 승리하며 10대 여자기사로는 최초로 500승 고지를 밟았다. 500승까지 걸린 기간도 여자신기록이다. 남자까지 범위를 넓히면 최연소 500승 기록은 이창호 9단이고 김은지는 두 번째. 이창호는 18세 때 500승을 달성했다.

끝내기도 강해져 19세에 500승
여자바둑 언제 남자 이기나 묻자
“내 목표는 세계 최고 되는 것”

김은지는 NH여자리그에서도 10전 10승을 거두며 팀(H2 DREAM 삼척)을 1위로 끌어올렸다. 거의 모든 대회에서 발군의 성적으로 맹활약하는 바람에 두 개의 바둑채널에서 김은지 바둑이 동시에 방영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전보다 역전승도 많아졌다. AI 그래프로는 분명히 지고 있었는데 최후에 반집을 이기곤 했다. 김은지는 타고난 전투형 기사다. 사활에 능하고 백병전도 좋아하는 격렬한 기풍을 갖고 있다. 한데 요즘은 전과 달리 놀라운 집중력과 끈기를 보여주고 있다. 전투와 끝내기가 결합하면 무서운 기사가 된다. 일류들은 다 끝이 강했다.

이런 김은지에게 팬들의 관심과 기대가 쏟아지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한국 여자바둑은 4년 전 최정 9단이 한번 크게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는 2022년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에서 일본 1위 이치리키 료, 중국 3위 양딩신, 한국 3위 변상일 등을 연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기적의 행진이라 불릴 정도로 바둑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사건이었다. 결승에서 최강 신진서 9단에게 패배했지만 여자바둑이 남자와 거의 대등해졌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마지막 한걸음이 부족했는데 팬들은 그걸 김은지가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국내기사 중에 여자기사에게 한판도 지지 않은 기사가 한명 있다. 70전 70승을 거둔 김지석 9단이다. (신진서 9단도 15세 때 한판 졌다) 그에게 여자바둑이 왜 남자를 넘어서지 못하는지 물어봤다.

“남자기사들에 비해 후반이 조금 약한 느낌”이란 답이 돌아왔다. 후반이란 끝내기나 집계산을 의미한다. 한데 최근 김은지의 행보는 후반의 각축에서 밀리지 않는 힘을 차곡차곡 쌓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지옥션배 마지막 판, 박영훈 9단과의 대결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시니어팀 주장 박영훈은 세계대회서 3회나 우승했고 무엇보다 끝내기에 능해 이창호의 ‘신산’ 별명을 본떠 ‘소신산’이라 불렸다. 김은지는 그런 박영훈과 끝내기 대결에서 반집승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김은지는 쓰라린 패배를 맛본다. 새로 시작된 삼성화재배 세계바둑 예선 결승에서 중국의 저우훙위 7단과 5시간이 넘는 치열한 접전 끝에 반집패를 당한 것이다. 승부세계는 마냥 이길 수 없다. 폭풍 같은 18연승 끝에 뼈아픈 일격을 당한 김은지는 아마 이날 울었을 것이다. 한데 그날 밤, 놀랍게도 전에 보낸 질문에 대한 답장이 왔다. 다음은 질문과 답장 내용이다.


Q : 최정 9단이 세계정상급 기사들을 연파하고 삼성화재배 결승에 올랐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A : “당시 최정 사범님의 결승진출은 엄청난 자극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수준의 기사들을 상대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목표를 확실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 여자바둑이 남자바둑에 밀리는 이유로 남자는 강하다는 잠재의식, 그리고 승부에 꼭 필요한 자신감 부족을 꼽는 사람도 있는데 동의하시나요.
A :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를 비롯한 젊은 여자기사들에게 상대가 남자라서 약해진다는 식의 잠재의식은 전혀 없습니다. 승부에서 자신감은 그날의 컨디션과 얼마나 준비했는가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Q : 그렇다면 여자바둑이 남자에 밀리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 “AI가 없던 시절에는 남녀바둑의 차이가 있었지만 AI로 연구하는 현재는 그 격차가 줄어들고 있고 기량의 차이는 크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Q : 여자바둑의 선두에 서게 되면 반드시 받게 되는 질문은 남자바둑에 관한 겁니다. 여자는 도전자인 셈인데 언제쯤 남자를 이기게 될까요.
A : “‘언제 이길 것인가’라는 질문이 조금 이상합니다. 이미 많은 남자기사들을 이겨왔고 이기는 중입니다. 저는 남자를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세계최고기사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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