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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환의 도시의 맛] 공공시설, 한 지붕 아래 있다고 복합일까

중앙일보

2026.09.02 08:14 2026.09.0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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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환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장·건축학부 교수

임영환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장·건축학부 교수

요즘 새로 지어지는 공공시설의 이름에는 유난히 ‘복합’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주민센터에 작은 도서관이 들어서고, 조금 규모가 큰 복지시설에는 수영장이 함께 조성되기도 한다. 도서관과 체육관이, 어린이집과 경로당이 함께 있는 것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과거에는 각각 독립된 건물로 지어졌던 시설들이 하나의 지붕 아래로 모이고 있다.

여러 기능 한데 합친 복합센터
각각의 시설인 듯 따로 놀거나
20년 후 쓸모없는 시설 될 수도
미래의 연결·변화 살펴 지어야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가 설계한 센다이 미디어테크의 내부. [사진 하얏트재단]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가 설계한 센다이 미디어테크의 내부. [사진 하얏트재단]

이유는 다분히 현실적이다. 도시의 땅값은 비싸고 공공이 확보할 수 있는 부지는 한정돼 있다. 재정 부담은 커지는데 시민이 요구하는 공공서비스는 오히려 다양해졌다. 여러 시설을 한곳에 모으면 주차장이나 기계실 같은 공간을 함께 사용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주민도 한곳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정책도 이러한 흐름을 가속했다. 2019년 발표된 ‘생활SOC 3개년 계획’에서 시설 복합화가 주요 추진방식으로 제시됐다. 세종시는 도시 조성 초기부터 생활권마다 주민센터를 비롯해 도서관, 체육·문화시설 등을 한데 모은 복합커뮤니티센터를 조성해 왔다. 이제 공공시설의 복합화는 유행이라기보다 우리 도시가 처한 현실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에 가깝다.

하지만 공공시설 몇 개를 한 건물에 넣었다고 좋은 복합시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민센터에 체육관과 수영장, 문화공간을 계속 더하다 보면 건물은 금세 거대해진다. ‘어차피 건물 하나 짓는데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자’는 식이라면 복합화는 공공서비스의 혁신이 아니라 공공의 ‘압축 포장’에 그칠 수도 있다.

복합과 분산은 대립 개념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시설을 합치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용시간과 운영 주체가 다르고, 도서관의 정숙함은 체육관의 소음과 충돌한다. 주차와 동선에도 문제가 생긴다. 잘못 합치면 한 건물 안에 있으면서 입구도, 운영도, 이용자도 따로인 시설이 만들어진다. 건축적으로는 하나의 건물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시설이 나란히 들어선 것과 다르지 않다.

건물의 효율이 곧 도시의 효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 동네에 흩어져 있던 시설을 한곳에 모으면, 누군가에게 걸어서 5분 거리였던 도서관이 버스를 타고 찾아가야 하는 시설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훌륭한 복합시설이 만들어지는 동안 도시 곳곳의 공공서비스 접점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미국 유학 시절, 집 근처의 작은 동네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이었지만, 퇴근길에 잠깐 들러 책 몇 권을 빌리거나 마감 시간까지 앉아 있다 나오는 일이 어느새 일상이 됐다. 그런 도서관이 다음 동네에도, 그다음 동네에도 있었다. 작은 도서관들이 도시 전체를 촘촘하게 채우고 있었다.

복합과 분산은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대립 개념이 아니다. 분산의 가치가 공공서비스를 시민의 생활 가까이 가져가는 데 있다면, 복합의 가치는 서로 다른 시설과 활동을 연결하는 데 있다. 어떤 시설은 생활 가까이에 작게 분산돼 있는 편이 좋고, 어떤 시설은 한곳에 모였을 때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공공시설을 계획할 때 생각해야 할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 시간의 문제도 있다. 공공건축은 한번 지으면 수십 년을 사용하지만 그 안에 담기는 프로그램의 수명은 건물만큼 길지 않다. 어린아이가 많던 동네가 20년 뒤 고령자의 동네가 될 수도 있다. 지금 부족한 시설이 20년 뒤에도 부족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시설과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채우는 것이 장기적으로도 가장 좋은 선택일까. 50년을 사용할 공공건축이라면 오늘의 필요뿐 아니라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까지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쇼핑몰의 공간 구성은 눈여겨볼 만하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쇼핑몰은 판매면적 못지않게 공용공간에 공을 들인다. 코엑스의 별마당도서관처럼 직접적인 판매공간이 아닌 곳을 중심에 두기도 하고, 전시와 공연을 위한 문화공간, 정원과 광장에 적지 않은 면적을 할애하기도 한다. 이런 공간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머물게 하며, 결국 쇼핑몰 전체의 가치를 높인다.

공공복합시설도 마찬가지다. 각 시설이 필요한 면적을 확보하는 데만 집중해서는 복합의 장점을 살리기 어렵다. 복합시설에서는 각 시설의 공간만큼 시설과 시설 사이의 공간이 중요하다. 어느 한 시설에 속하지 않는 공용공간에서 서로 다른 이용자와 프로그램이 교차하고, 각각의 시설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새로운 활동이 생겨날 수 있다.

여백 많은 센다이 미디어테크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가 설계한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그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도서관과 갤러리, 미디어 기능이 한 건물에 있지만, 흥미로운 것은 각 시설보다 그 경계를 느슨하게 만든 공간이다. 정해진 기능으로 채워지지 않은 여백이 서로 다른 활동을 이어주고, 때로는 애초에 계획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여백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쓰임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공간의 용도와 경계를 지나치게 고정하지 않고 여러 프로그램이 함께 사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달리 쓸 수 있도록 한다면, 오늘의 조합이 달라진 뒤에도 새로운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 좋은 복합시설은 지금 필요한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는 건물이 아니라, 미래의 변화를 받아들일 여지를 남겨둔 건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복합화 자체가 아니라 복합화가 너무 당연한 정답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도시의 규모와 밀도, 인구 구조와 생활방식에 따라 필요한 공공시설의 크기와 위치, 조합은 달라져야 한다. 건물 하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채웠는지가 아니라, 함께 있어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도시 전체에서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까지 생각해야 한다.

한 지붕 아래 모으는 것은 복합의 시작일 뿐, 완성이 아니다. 이제는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열어둘 것인가를 물을 때다.

임영환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장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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