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의 법’.
개봉 27일 만에 900만 관객을 돌파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의 흥행과 함께 인구에 회자되는 말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제우스의 법’은 ‘신이 언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찾아올지 모르니 낯선 손님이 찾아오면 잘 대접하고, 대접받은 사람 역시 정중하게 보답해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의 환대 윤리인 ‘크세니아(Xenia)’를 놀런 식으로 명명한 것이다.
상호호혜성을 강조하는 고대인의 황금률인 ‘제우스의 법’은 상호 신뢰가 흔들리는 오늘에 던지는 질문으로 여겨지지만 22년에 걸쳐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완역한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최근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환대의 윤리에 대해 흥미로운 설명을 덧붙였다. 호메로스는 환대의 윤리에 비딱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고, 환대가 사람을 나약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의 메시지를 담았다는 것이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이렇다. 귀향을 결심한 오디세우스가 고생한 기간은 단 2년에 불과했고, 환대에 빠져 보낸 시간은 무려 8년에 달했다. 귀향길에서 온갖 간난고초를 경험한 오디세우스가 ‘등 따시고 배부른’ 환대에 귀향길에 다시 오르길 주저하며 미적댔던 건 인지상정이었을 터. 환대와 호의 속 현실에 안주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굴복한 탓에 오디세우스의 귀향 여정이 길어졌다는 이야기다. 환대와 호의의 역설인 셈이다.
환대와 호의의 역설을 떠올리게 된 건 정부가 821조원 규모의 내년도 수퍼예산을 편성하며 의욕적으로 배정한 43조원 규모의 청년 예산을 살펴보면서다. 단연 눈에 띄는 건 지난달 28일 발표한 ‘청년 성장 단계별 종합투자 추진 전략’이다. 지방우대지역에서 내년에 첫째로 태어난 아이는 0세부터 34세가 될 때까지 최대 2억원에 가까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출산·아동수당부터 자립 펀드, 대학 장학금과 공공임대·월세 지원, 취업과 결혼까지 생애 전 과정에 국가가 살뜰하게 각종 지원을 제공하는 패키지다. 그야말로 ‘요람에서 자립까지’다.
요람에서 자립까지, 최대 2억 지원 청년 불평등·격차 해소 필요하지만
시혜 아닌 자립 여건 조성이 중요
이재명 대통령은 “청년이 진짜 취약 세대다. 지금 청년은 더 나은 일을 꿈꾸는 것조차 쉽지 않은 만큼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43조원짜리 ‘청년 환대 베팅’의 취지를 밝혔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청년층의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치솟는 집값과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비 부담까지 늘며 청년층의 삶은 팍팍하다. 세대 간 불평등뿐 아니라 세대 내 불평등이 커지는 상황이니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고, 출발선의 격차를 줄이는 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보모 국가를 자처한 정부의 각종 현금성 지원이 청년층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인지는 의문이다. 환대로 여겨질 만한 정부의 현금 살포 정책은 오히려 안온한 현실에 안주하게 해 청년층의 자립을 막고 그들을 더 취약하게 할 수 있다. 청년층이 정부의 지원에 기대어 살게 하는 건 어쩌면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의 구혼자를 자처하며 ‘제우스의 법’을 악용해 성을 점령한 채 먹고 마시며 성의 곳간을 축낸 이들처럼 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환대와 지원으로 위장한 현금성 지원은 훗날 청년층이 갚아야 할 유예된 나랏빚일 뿐이다.
청년층이 원하는 건 정부가 쥐여주는 시혜성 푼돈이 아니다. 건강한 경제활동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다. 가장 필요한 건 안정적 소득과 고용을 보장하는 양질의 일자리다. 정부의 서슬 퍼런 기세에 기성세대가 올라탔던 갭투자 같은 자산 증식 방식은 언감생심이지만 그들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대출을 풀어주는 등 주거 사다리에 오를 기회를 줘야 한다. ‘쓸데없이 돈을 뿌려 대느니 43조원으로 차라리 공기업이라도 만들어 고용을 창출하는 게 낫겠다’는 어느 댓글이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