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P-1계열 비만치료제 사용자들은 식욕이 줄면서 전반적으로 먹는 양이 줄어든다.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쉽게 포만감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작은 사이즈의 버거 세트 메뉴를 내놨다. 뒤에 있는 일반 버거 세트보다 현저히 작은양의 GLP-1메뉴. AFP=연합뉴스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계열 투약자들은 당이 들어간 일반 탄산음료를 덜 마시는 편이지만, 반대로 다이어트 탄산음료는 더 많이 찾습니다.” (코카콜라컴퍼니 2025년 4분기 콘퍼런스콜)
“고객의 최대 25%가 GLP-1을 사용합니다. 체중이 줄든 늘든 우리에겐 모두 긍정적이죠.” (빅사이즈 의류업체 데스티네이션XL 2026년 1분기 콘퍼런스콜)
“GLP-1은 Z세대의 대마초, 알코올 소비량 감소와 함께 주류 수요를 줄이는 3대 원인입니다.” (잭다니엘 제조사 브라운포맨 2025년 4분기 콘퍼런스콜)
최근 미국 식품·음료·의류 기업들의 실적 발표에선 위고비·마운자로 등 GLP-1계열 비만치료제가 단골로 등장한다. 비만치료제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히 따져 묻는 질문에 기업들은 진땀을 뺀다. 전쟁이 터지면 유가·원자재값 상승을 기업이 관리해야 하듯, 소비재 산업에서 GLP-1은 유가처럼 기업 실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상수가 된 것. 시장조사업체 LSEG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주요 기업(의료 분야 제외) 30여 곳의 실적 발표에서 GLP-1 또는 체중 감량이 언급됐다. 2025년, 2024년 같은 기간 각각 14곳, 5곳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약 하나가 산업 지형 전체를 바꾼 사례는 전에도 있었다. 1960년대 미국에 보급된 경구피임약이 그랬다. 여성이 스스로 임신 시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되자 여성의 대학진학률·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졌고,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금융·패션·유통 시장 구도까지 재편됐다. 쉽고 빠르게 살을 뺄 수 있는 비만치료제 역시 피임약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조짐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위고비·마운자로가 미국에 출시된 지 약 5년, 이미 식탁과 술잔과 옷장이 달라졌고 그 여파는 자본 시장으로도 옮겨붙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이젠 한국 차례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한국 비만치료제 시장은 2025년 기준 세계 5위(3억770만 달러)였지만, 전년 대비 137% 성장하며 상위 5개국 중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김우혁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비만치료제로 인해 체중 관리가 ‘오랜 의지와 노력의 과제’에서 ‘의학적 도움을 받아 빠르게 관리할 수 있는 자기 투자’로 바뀌었다는 것이 소비자 행동 측면에서 주목되는 점”이라며 “특히 한국에서는 외모가 사회적 경쟁력과 연결된다고 인식하기에 비만치료제가 건강 관리 수단을 넘어 자기 관리의 기본값처럼 여겨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외모에 민감하고 소비자 반응이 빠른 한국에서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이미 돈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바나나우유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겐 여전히 ‘편의점 원픽’이지만 최근 편의점 매출 1위 왕좌에선 밀려났고, 날씬해야 입을 수 있는 슬림핏 팬츠 판매액은 1년 새 640%가량 뛰었다. 전통적인 경기 방어주에 해당하는 패션·식음료 주가는 물론, K뷰티 산업도 비만치료제의 영향권에 든 지금 The JoongAng Plus에서 비만치료제의 돈맥(脈)을 따져보자.